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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범람시대

은퇴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

by 포포

은퇴한 사람을 만났다.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미소만 지었다.

또 은퇴한 사람을 만났다. 계획을 묻지 않고 최근 일상 얘기만 나누었다.

다시 은퇴한 사람을 만났다. 정치, 사회, 환경, 민족... 온갖 염려들을 나누다 헤어졌다.


은퇴하기에는 육체가 건강하고 의욕이 넘치며 살날은 여전히 많을 이들이 주변에 넘친다. 이른바 OB 범람시대다. OB이지만 Old하지 않고, 물러났지만 의욕과잉인 사람들. 그래서인가, 이들을 활용해 뭔가를 도모하려는 사업, 사건, 사고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물러난 것을 밀려난 것, 버려진 것으로 인식하다가 쓰임새를 인정받으면 솔깃해지고 의욕이 샘솟는 것, 인지상정이다.


또 은퇴한 사람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로시니처럼 산다’고 말했다. 로시니? 오페라 작곡가? 음악에 빠져 사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로시니는 37세에 은퇴했어.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는 낙으로 평생을 보냈지. 나도 그러기로 했어.”


로시니(Gioachino Rossini)는 ‘세비야의 이발사’, ‘윌리엄 텔’ 등의 오페라로 음악사를 빛낸 작곡가다. 37세에 모든 작곡 활동을 중단하고 남은 인생을 미식가이자 예술 애호가로 살았다. 요리와 사교를 즐기며 자기 인생을 요리하며 보냈다.


에세이(Essay)란 용어가 처음 쓰이게 된 최초의 에세이스트 몽테뉴도 37세에 은퇴했다. 이후 글을 쓰며 여행하며 살았다. 그가 쓴 글, 에세(몽테뉴 수상록으로 불린다)는 ‘자신을 탐구하는 글’이었다. 나를 뽐내기 위한 탐구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를 찬찬히 기록해 간 글이었다. 그의 글 어디에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요나 명령을 발견할 수 없다.


(참고로, 한국에서 몽테뉴 수상록을 제대로 읽은 이는 드물다. 대부분 축약본이나 요약형 책들이 출간됐고, 그나마도 영어와 일본어의 중역본이었다. 원문 완역본은 2022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1988페이지 엄청난 두께의 책이 처음이니 번역자와 교열자 외에 몇명이나 완독했을지 궁금하다. 민음사에서는 두 명의 번역자가 10여년 동안 작업했다고 밝혔다).


물러나는 것의 관점을 바꾸어주는 이들이 종종 나타난다. 은퇴한 지 제법 오래된 선배 한 분은 “매일 한 사람씩 떠올리며 엽서를 쓴다”고 했다. 매일 엽서를 쓸 만큼 의미 있는 이들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몇 안 됐는데, 쓰다 보니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무료한가 싶었다. 그의 답은 단순했다.


“은근히 재미있어. 가끔 울컥해지기도 해.”


그의 은퇴는 밀려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분기점이지 싶다. 이 시대의 OB들이 새로운 재미와 설렘을 갖고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메가트렌드로 기류화될 때, 세계에서는 그것을 한국형 OB라이프-K라이프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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