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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먹었다

12월은 분주해서 더 춥다

by 포포

연중 가장 추운 날, 찐 겨울은 언제일까. 쉽게는 겨울의 한복판으로 여길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체감한 바로는 겨울 초입과 막판의 꽃샘추위다. 실온도는 그렇지 않겠지만 계절이 급변하면서 얻어맞는 상대적 감각 때문일 것 같다. 겨울이 한창 진행돼 한복판의 강추위를 맞을 때는 추위에 적응이 됐을 것이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맞는 추위는 훨씬 강도가 셀 것이다.


꽃샘추위는 반대로 봄에 대한 기대가 만드는 조급함이 몸을 더 춥게 만드는 것으로 해석된다. 몸보다 마음의 추위가 훨씬 무서운 법. 12월은 분주해서 더 춥다.


얼떨결에 겨울을 먹었다. 겨울 음식을 먹자는 말을 한다는 것이 (축약이 트렌드가 되어서인지) “겨울 먹자”는 말로 튀어나왔고, 파트너가 “그거 참 맛있겠다”고 답했다. 겨울을 어떻게 먹을지, 겨울은 어떤 맛이고 어떤 색깔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겨울을 찾아 나섰다. 지난 주말의 해프닝이다.


겨울을 확, 먹어 치우면 추위가 사라질까.

천천히 먹는 게 나을까, 잽싸게 먹어 버리는 게 나을까.

건강에 좋은 음식일까, 불닭볶음면처럼 자극적인 음식일까.

토종일까, 수입산일까.

겨울을 요리하는 셰프는 어떤 재료를 쓰고, 조리할 때는 어떤 도구를 사용할까.


그런저런 상상을 하며 걷다 보니 허기가 찾아왔고, 허기가 심해지니 추위가 더해졌다.

겨울을 찾아 나설 때는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 떠올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당겨 왔다. 결국 눈앞에 먼저 띈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떨결에 겨울을 먹었다.


겨울에 떠오르는 음식은 많지만 겨울 전용 음식은 많지 않다.

군고구마, 군밤, 호빵, 팥죽, 굴, 꼬막, 과메기, 방어, 꽃게 등은 확실한 겨울 움식이다.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나고, 겨울에 먹어야 안전하고 영양적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산물이 많은 것은 겨울 땅에서 나는 작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 바다 생물들도 자기만의 물이 오르는 제철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편의점 겨울상품에 호빵과 군고구마가 등장했다. 추억의 음식 같지만 실은 스테디셀러다. 편의점 업계가 그 귀중한 공간을 추억에 내줄 리가 없다.


겨울 과일은 뭐니뭐니해도 감귤이 우선이고 사과와 딸기가 뒤를 잇는다. 사과는 겨울 초입에, 딸기는 겨울 말미가 제철이다. 사과는 수확기가 늦가을이고 경도가 단단한 과일이라 유통기간이 길다.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가 겨울이다. 딸기의 제철이 봄에서 겨울로 바뀐 것은 기술의 발전과 하우스재배의 힘 때문이다. 그렇게 다 제철에는 이유가 있다.


제철 만난 생물은 신난다. 제철 음식 먹을 때도 신난다. 두 신남을 대비하니 어쩐지 인간의 우악스러움이 느껴진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그러면서 생기를 찾는 사람들, 생존은 야박하다. 시린 겨울에는 그냥 겨울만 먹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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