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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Jun 11. 2023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을 가장 부러워하나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늘 꼽아놓았다. 한 번도 누가 물어본 적은 없었는데도. 준비해 둔 대답을 잊지 않기 위해 때때로 곱씹어 보기도 했다. 마치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처럼.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사람’.


그렇다. 나의 여러 가지 취약점 중에서도 가장 못마땅한 부분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였다. 악필이며, 말주변이 없다는 점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바꾸고 싶지만 도통 바꿀 수가 없었던 아픈 손가락들이었으므로.


그런데 요즘, ‘부러움 순위’가 바뀌었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요. ”


(물론 글씨와 말주변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크지만, 이 생에 이 두 가지를 바꾸기란 불가능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나니 좀 덜 부러워졌다.)


자주 마주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직업,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에 쏙 들어온다. 최인아 대표의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도 그랬다.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에 늘 이렇게 쓴다고.


‘좋아하는 것’


두 단어가 간결하고 명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부러웠다.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니.


그러나 책을 쓸만큼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빛이 났다. 같은 업종이라도 그런 사람이 몸담고 있는 일터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그곳의 커피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다시 그 책방에 가서 책을 고르고 싶었다.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다. 치과 교정학 수련을 함께 받았던 의국의 선배이자, 나의 사장님(?). 그분은 항상 “나는 이거 칠십까지 할 거야."라고 말한다.


주변에 치과의사가 많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열심히 진료하고, 병원을 경영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런데 즐기면서 하는 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여느 직장인들과 비슷하다.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거니까', ‘돈 벌어야 하니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만 해도 그랬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늘 한 편으로는 ‘이거 언제 때려치우지?', ‘이거 말고 다른 거 뭐 할 거 없을까?’를 궁리했다. 일이란 ‘밥벌이를 해야 하니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것’. ‘하긴 하지만, 평생 먹고 살 돈이 있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이었다.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싶어졌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 하고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일의 다른 측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밥벌이’외에도 일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넉넉한 시간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놀이, 여가, 취미도 좋았다. 그러나 ‘일’을 할 때 감지하는 뚜렷한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돈을 버는 것과 사람의 가치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식으로 자아를 확인해 온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불안하지 않았다.




다시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간다. 출근 준비를 할 수 있고,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물론 신나고 즐겁지만은 않다. 쉽게 긴장하는 편이라 출근 전날에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밥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내 부족함을 확인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을 좋아한다는 건, 그 덩어리가 모두 마음에 쏙 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안다.  힘들고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서 다른 곳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즐거움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 몰입하는 것. 그것이 일을 좋아한다는 게 아닐까.


아직 나로부터는 환한 빛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생에 악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나의 일을 사랑하는 건...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옅은 희망을 품어 본다.  


그렇다고 칠십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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