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May 22. 2019

그래도, 다시 가로수길

난 주로(酒路) 여기를 가 - #8. 가로수路

 무리 중에 유독 맞지 않지만 자주 만나게 되는 친구가 있다. 만나고 나선 '역시 나랑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또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는 그런 친구.

 연인관계에선 조금 더 확연히 드러난다. 카톡을 하거나 데이트를 할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홀로 '이제 관계를 정리할 때야'라고 다짐하지만 다음날 일어나 '잘잤어?'라고 다시금 쉽게 마음과 기회를 내어준다.


 가로수길은 내게 항상 그런 존재이다. 처음 성인이 되어 가로수길을 갔을 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커피스미스의 오픈 테라스 좌석엔 모델 같은 사람들과 그들의 연예인 같은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그 앞 인도로는 거리가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모예드를 끌고 다녔다. 모델 같은 친구도, 강아지도 없었던 나는 소외감이 들었다.

 몇 년 후, 가로수길 뒷골목에 사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를 따라 가로수길 곳곳을 다녔다. 금요일 저녁이면 한추(꼭 줄여서 읽어야 한다)에 가 고추튀김을 먹고, 주말 아침이면 딸부자네 집에서 불백도 먹었다. 마치 가로수길 주민이 된 냥 골목을 쏘다녔는데, 다닥다닥한 오래된 원룸 촌에 주차되어있는 외제차의 이질감이 내겐 항상 불편했다.

 그리고 지금 가로수길은 '한 물 갔다'. 친구들에게 가로수길에 가자하면 '라인프렌즈' 갈 거냐는 놀림이 따라온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대신 우리는 도산공원, 학동사거리 뒷골목으로 빠졌다.  


 그렇게 늘 불편한 관계였던 가로수길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구석구석에 있는 보석 같은 술집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한물 간 탓에 금요일 밤 골든타임에 가도 한가하다. 또는 그 한가한 골목에서 유일하게 북적거리는 집은 블루리본보다 맛을 보장한다.

 



 차돌박이와 관자 그리고 신김치로 이루어진 차돌삼합(35,000)이 이 곳의 주메뉴이다. 


 어디서 먹든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싱싱한 해산물 재료와, 기본 이상하는 사이드 메뉴들 그리고 다양한 주종을 생각하면 이 곳을 선택하게 된다. 가게 분위기는 대학교 앞 여느 술집같이 테이블은 진덕하고 천장엔 소주 뚜껑으로 만든 고리가 걸려있다. 그런 가게 앞 카운터엔 와인잔이 잘 닦여 걸려있고, 주류냉장고엔 브루클린 라거와 제주 위트에일이 있다. 적당히 편한 분위기에 기본이 잘 갖추어진 가게다.




문어집


 가로수길에서 문어 하면 문어 치킨집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 기름 가득한 음식에, 늘 그렇듯 맥주를 마시기 식상하다면 이 곳이다. 문어숙회와 두부전 그리고 잘 칠링 된 화이트와인이 있다. 들기름에 노릇하게 구워진 두부와 화이트와인은 예상외로 궁합이 잘 맞는다. 가게는 굉장히 작지만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조용하고 사람도 적다. 문어숙회와 굴김치가 함께 나오는데, 굴을 먹지 못한다면 문어숙회를 조금 더 주는 것으로 대체도 가능하다. 모든 메뉴가 담백해 2차로 방문하면 좋다.






쿠이신보


 가로수길 골목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 바로 이곳, 쿠이신보다. 주말에 가면 웨이팅도 서야 하니 잘 피해서 가는 것이 좋다. 이 집은 타다끼가 유명하다. 그냥 토치로 그을려 낸 타다끼가 아닌 볏짚으로 구워내 불 향이 가득하다. 조리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어 마치 일본 현지의 선술집에 온 것만 같다. 보통 타다끼는 참치 한 종류만 있는데 이 곳은 참치 두 종류와 연어 그리고 잘 접하지 못하는 시메사바(고등어) 타다끼도 맛볼 수 있다. 


 꼬치류와 튀김류도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사이드로 시켜 먹기 좋다. 어떤 메뉴를 시켜도 맛있고 서비스도 훌륭하다. 술집이지만 콜키지도 2만 원으로 부담이 적은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갓포요리 집의 저렴한 버전 같으나 맛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가로수길에서 8년을 산 지인이 있다. 지인은 가로수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흥망성쇠를 다 보고 나니 떠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해보니, 꼭 사랑이라는 양의 감정만이 관계 유지에 있어 필요한 건 아닌 거 같다. 연민과 미움, 낯섬과 서운함이란 음의 감정도 적절하게 있어야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애틋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이 힘드니 술은 달아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