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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gle Oct 03. 2022

01. 소비 요정이었던 날들


 내 스물다섯 살 첫 직장은 패션회사였다. 그냥 100군데 쓴 회사 중에 붙은 회사가 공교롭게 패션회사였고, 몇 개월 뒤 다른 유통 대기업에 다시 신입사원으로 재취업했다. 유통업으로 이직하고 월급을 받기 시작하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회사에서는 온갖 세일들을 했다. 사내 임직원만 살 수 있는 패밀리세일, 불량품 행사, 체화 제고 행사 등등 매월 단위로 직원들에게는 적게는 20%에서 최대 90%까지 할인받아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졌다. 명품부터 저렴한 제품까지 나에게는 매일 블랙프라이데이였다. 그렇게 나의 소비 요정 생활이 시작되었다.


 400만 원 하는 명품백이 200만 원으로 팔고 있을 때 나에게는 200만 원이라는 돈을 쓴다는 것보다, 무려 400만 원짜리 가방을 단돈 50%에 살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내 월급은 항상 다시 회사의 매출로 돌아갔다. 


200만 원이라는 매우 큰돈을 썼지만, 나는 200만 원을 아꼈다는 생각이 강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다음 해 연말정산을 해보니 거의 내 소득만큼 카드 소비를 한 내 내역서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충격받았지만 주위 회사 선배들은 '원래 신입사원 때는 다 쓰는 거야~' '3년만 쓰고 그다음에 모아' 등의 이야기들로 나와 내 동기들을 안정시켰다.


 내 동기 중에는 원천징수 총소득보다도 카드값이 더 나온 친구가 있었다. 그건 우리끼리 전혀 부끄럽지 않았고, 플렉스 하는 멋진 친구라는 시선 정도였다. 동기들과 회사 사람들은 사내 행사에서 할인할 때 산 아이템들을 회사에 입고, 신고, 들고 오며 서로 알아봐 주며 시선을 더 얻었다. '오 OOO 사셨네요~'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저도 링크 알려주세요' 가끔씩 유통업 특성의 사치와 소비가 만연한 분위기에 작은 환멸도 날뻔했지만 월급 주는 곳이니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특히 꽂혀있던 카테고리는 신발이었다. 50만 원이 넘는 운동화부터, 100만 원짜리 구두, 50만 원짜리 슬리퍼 등등 세일을 할 때마다 사모았다. 그리고 자사 제품이 아닌 것들은 해외직구에 대해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알림 설정을 해두고 세일한다는 글이 보이면 후다닥 들어가서 해외직구까지 했다.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데 토즈 드라이빙 슈즈와 메종 마르지엘라의 독일군 운동화, 로저 비비에 구두와 플랫이 반드시 한 개씩 필요한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지네가 되어갔다.


 물론 한 달에 계획한 소비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월세는 얼마, 생활비, 저금 얼마씩 항상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놨지만 항상 오버했다. 체크카드를 쓰려 노력해도 신용카드 대금을 내면 돈이 하나도 없어서 체크카드를 쓸 수 없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주변에 다른 패션, 코스메틱 등 유통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서로가 서로의 소비를 부채질해줬다. 우리 회사 세일 제품을 친구에게 알려줬고, 친구는 자기 회사와 자기가 아는 세일 정보들을 공유해줬다. 그렇게 '할인'을 가장한 불필요한 '소비'들을 점점 쌓여갔고 나는 친구들 사이 '소비 요정'이 되어있었다. 세일 정보를 알려주고 소비를 부추기는 '소비 요정'


  소비 요정은 결혼 준비를   가장 피크를 찍었다. 분수에도  맞는 900 원짜리 롤렉스를 사면서 이건 천만 원짜리 샤넬백을  샀으니 그거에 대한 대체라고, 시계는 평생   있고 롤렉스는 나중에 리셀할  있는 수단이라고 합리화했다. 언제부터 생긴지도 모르는  결혼 로망이라는 명목으로 100 원이 넘는 마놀로 블라닉 슈즈를 샀다. 친구의 결혼사진이 너무 이뻤다는 이유로 스튜디오 촬영에 200 , 본식 촬영에 200 원짜리를 썼다. 남편은 소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는 지금  순간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 같아.' 정말 그렇게 돈을 펑펑 썼다.


 그리고 나는 결혼식을 끝냈고 그동안의 돈과 축의금을 모두 정산했다. 우리에게는 2억의 전세자금 대출과 3.7%라는 변동금리 이자가 남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2020년부터 시작한 빚투로 비트코인, 해외주식, 국내 주식에 돈이 다 물려 갚지 못하는 마이너스통장 5천만 원의 이율도 어느새 5%까지 올라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맞벌이라 둘이 월급을 모아 한 통장에 놓아 쓰기로 했다. 우리는 원리금 상환, 대출이자, 공과금과 생활비, 통신비, 교통비 등을 제외하고 서로 용돈 50만 원을 정했다. 내 용돈은 다시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소비 요정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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