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아프다고요
산모가 겪는 이 고통을 제발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지난주 금요일까지 점차 나아진다 싶었더니 아차, 토요일 아침부터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저녁에 맞기로 한 수액을 낮에 긴급 투여하고 나서 고통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내 마음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고통이 차츰 하향곡선을 그리는가보다 싶으면 다시 아프길 벌써 몇 차례, 이대로 무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열 달 내내 아픈 것은 아닐까. 인내심이 바닥났다.
산모의 건강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임신 상태이므로 임신 중절 가능 범위였다. 짝꿍에게 이미 여러 번 ‘나 포기하고 싶다’고 해왔는데, 이젠 진심이 되었다. 확신이 들었다. 난 굳이 이걸 견디면서 애를 가질 정도로 간절하지 않았다. 아기 키우는 행복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생각을 짝꿍에게 전달했다. 그냥 투정부리는 것이 아니고, 진심이라고. 이렇게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다고. 내가 이미 죽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지금 뱃속에 어떤 생명체를 기르고 있는 몸뚱이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도 토하느라 양치도 못해서 치아도 상한 것 같고, 샤워는커녕 세수도 못해서 얼굴이나 몸에 각질과 기름때가 수북하다. 예전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짝꿍은 그저 ‘내가 더 잘할게’ 라는 말뿐이었다. 어찌 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임신. 이번에 포기하면 당연히 두 번 다시 임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짝꿍은 내가 더 버텨주길 바란다고 했다.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버티라고? 너는 나보다 애가 더 중요하구나? 그럼 그냥 내가 죽든 살든 버텨서 애 낳아줄 테니까 알아서 키워, 난 낳고 집 나갈 거야. 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루 종일 이야기했지만 평행선이었다. 난 지금 우리 둘만 있어도 참 행복한데, 짝꿍은 아니었구나, 너무 맹목적으로 ‘애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가족상을 그리는 것 같았다. 아기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너무 환상만 있는 것 같았다.
아이 때문에 부부 사이가 더 끈끈해진다는 말에 나는 100% 반대한다. 아이가 없어도 끈끈한 관계여야 그 사이에 아이가 일으키는 다양한 변수에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미끼’로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묶어두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때문에, 나는 아이가 없어도 행복한 우리 관계에 이미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짝꿍은 아니었나? 내가 이렇게 힘든데 버텨달라니. 너무 슬프다. 임신을 여자 5개월 남자 5개월 반반씩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통을 왜 나 혼자 다 겪어야 할까...
무엇이 정답일까. 잘 모르겠다. 나름 계획임신이었는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거라면, 사실 나 역시도 진심인 게 아니라 그저 ‘임신호르몬’에 의한 우울감, 혹은 입덧 등의 고통으로 인한 우울증인 걸까?
좀만 버텨서 출산을 하면 나아질까? 하지만 출산 후에 후회하게 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는데 큰일이다.
하늘이시여, 제가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현명한지 부디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