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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de Jan 16. 2020

병원에서의 일상

하루하루 소중한 숨 이어가기

병원 생활도 이젠 익숙해졌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오늘로 입원한지 며칠째인지.. 아 생각하기 싫다.


병원에서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5시 수액교체 - 어쩔수 없이 잠에서 깬다.

8시 아침식사

8시반 위장약 2알 -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버겁다.

9시반 입덧약 1알

12시 점심식사 - 이때 쯤엔 항상 수액빨이 떨어지는것 같다. 점심을 제대로 먹은적이 없다

13시 수액교체

15시 속쓰림약 1알

17시 저녁식사

18시 위장약 2알

20시 입덧약 2알

21시 수액교체


산부인과 입원병동이다보니, 대부분의 환자는 출산한 산모들이다.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다. 갓 출산해서 허리도 아프고 몸은 힘들겠지만, 그 와중에 아기 사진을 보며 웃고, 면회온 가족들과 함께 꺄르르 하는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온다. 화가 난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그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해서, 나는 항상 외톨이처럼 1인실 안에 처박혀있다. 청소하시는 분은 내 마음도 모르고 환기 좀 시키라고...ㅠ


비좁은 병동이지만 간혹 산책이나 하자 싶어 링겔을 질질 끌고 돌아다니는데, 그 때마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맞은지 모른다. 그러다 간혹 1-2명의 링겔 꽂은 환자를 만나면, 고통을 나누는 묘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행복한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주 괴로운 요즘이다.


산부인과 입원병동은 식단도 죄다 출산한 사람 위주이다. 삼시세끼 미역국이 나온다. 그 사람들이야 2-3일만 입원하면 되니까 괜찮겠지. 나는 1주 넘게 미역국을 받으니, 이제 미역국 냄새만 맡아도 또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3일 전, 퇴원을 시도해보느라고 수액을 줄여보았더니 급격하게 다시 토를 하기 시작해서 마음을 비웠다. 앞으로 빨라도 1주, 길면 2주간 추가로 입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한달... 두달...은 더 입원해야할까?

 

병원비 중간정산하면서 식겁했다. 이대로 가다간 가계가 거덜날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임신을 유지하는것이 맞나 모르겠다.


수액을 줄였다가 다시 원상복구했지만 몸이 바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괜히 줄였다. 하루 종일 토를 하니 이제 수액도 안 듣나 싶어서 무서웠다. 참다참다 너무 아파서 간호사실에 전화해서 약을 추가로 달라고 했는데, 좀 더 버텨보자고 하길래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진짜 많이 참다가 전화드린 건데요...ㅠ 퇴원은 하고 싶고... 근데 몸은 너무 아프고...


오늘은 저녁식사를 하다가 또 펑펑 울었다. 밥이 이렇게 한 고봉씩이나 놓여있는데 왜 목구멍에서 안 넘어가니... 삼키고 싶다.. 명치 이하로 음식이 내려가는 기분을 못 느껴본지가 언제인가.. 항상 명치 즈음에 음식이 닿는 순간 다시 식도를 역류하여 입으로 뿜는다. 하, 너무 힘들다.


눈물을 닦고 있는데 간호사가 왔다. 나 정도로 심한 산모도 꽤 있다는 말로 위안을 해주고, 나를 꼭 안아주는데, 또 서러움에 눈물이 폭발... 임신하고 울보가 되었다.


한주간 입원하다보니 간호사 10여명의 진료를 다 골고루 받게 되었다. 이젠 병원 사람들 모두의 얼굴을 다 알게 되었다. 불편한 간호사도 2-3명 있고, 오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간호받는 느낌을 주는 간호사도 있다. 토할때마다 식은땀이 많이 나는데 그때마다 알아채고 옷 갈아입혀주는 간호사도 있는가 하면, 뭔가 하는 행동이 불안불안해서 내 신경이 곤두서게 하는 간호사도 있다. 가뜩이나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서 예민한데... 간호사가 마음을 다해 '간호'를 해주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그래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병원에만 있으니 내가 잉여인간이 된 것 같다. 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사회생활도 못하고...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짝꿍은 나에게, 나는 지금 매일매일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었다. 그래, 나는 병원에서 쉬는 게 아니야, 병원에서 매일매일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하루하루 숨쉬고 트림하고 먹고 대소변 보는,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버거운 요즘이지만, 조금씩 힘을 내보자.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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