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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May 11. 2020

나는 오늘도 물을 짜내야 하는 마른오징어다

(마른오징어에는 얼마만큼의 물이 있을까?)

    어떤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해야 할 중간 과정들이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그 과정들이 간소화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출근 준비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직장인 남성 A 씨가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 7시까지 현관문을 나서야 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한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5분 정도 침대에서 좀 더 뒹굴거리다가 물도 한잔 마시고, 화장실에서 유튜브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볼일도 보고, 음악을 들으며 샤워도 한다. 그리곤 머리를 말리고, 옷 갈아입고, 로션을 바르며, 거울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고, 양말도 신고, 와이프가 차려준 아침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한 다음 차 키와 지갑, 가방 등을 챙기고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나선다. 현관문을 나설 때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55분이다. 목표 시간인 7시보다 5분 정도 이른 시간이다. 현관 밖에는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시계를 확인하고, A 씨의 옷 상태를 훑어본다. 그리고 챙겨야 할 물건 중 빠트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아침에 여유가 많아 보이시는군요. 내일부터는 6시 30분까지 나오도록 하세요."라고 말한다. A 씨는 6시 30분까지 나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해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이제 A 씨는 6시 30분까지 현관문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 A 씨의 출근 준비 모습은 어떻게 될까? 똑같이 6시에 일어났지만 이제는 침대에서 뒹굴거릴 여유가 없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시간도 없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회사에 가서 볼 일을 봐야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샤워를 하려고 했지만 샤워할 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간단히 머리를 감고 세수만 한다. 그리곤 허겁지겁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침을 차려주던 와이프는 오늘부터 친정에 가 있어서 직접 차려먹어야 하는데 서툴기도 하고 시간도 부족해서 아침 식사는 전 날 사 온 샌드위치나 시리얼로 대충 해결한다. 그리곤 6시 30분에 현관문을 나선다. 너무 급히 서둘렀는지 현관문을 나서는대도 숨이 찬다. 오늘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현관 앞에서 A 씨를 맞는다. 


  그는 시계를 보더니 "시간을 딱 맞추셨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헐떡이시는 거죠? 앞으론 좀 여유 있게 나올 수 있도록 하세요"라고 말한다. 검은 옷의 사내는 A 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넥타이가 삐뚤어진 것을 확인하고 A 씨에게 질책하듯 말한다. "넥타이가 삐뚤어졌네요. 넥타이를 한 두 번 메어본 것도 아니고 매일 하는 일인데 아직도 넥타이를 제대로 못 메시나요? 다음부턴 주의하세요. 1차 경고입니다." A 씨는 "6시 30분까지 준비해서 나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옷매무새를 미처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해보지만 검은 옷 사내는 말한다. "오늘 아침은 드셨나요? 식사 시간을 줄이던지 생략하던지 해서 시간을 확보하세요. 그리고 옆집의 B 씨는 10분 먼저 일어나서 준비해서 이미 나갔는데 왜 당신은 더 일찍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자꾸 이렇게 불평만 하시면 앞으로 A 씨와 같이 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A 씨는 알겠다며 마지못해 대답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이때 뒤에서 검은 옷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 내일부터는 6시 15분까지 나오도록 하세요" A 씨는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곤 생각한다. '넥타이 때문에 남한테 핀잔을 듣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군. 내일부터는 좀 더 일찍 일어나야겠구나. 그런데 오늘보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 단축됐으니 최소 20분 정도는 일찍 일어나야겠구나... 어쩌면 내일부턴 아침을 굶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때 A 씨는 허기를 느낀다.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발가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에 구멍이 뚫려 있다. 게다가 양쪽 양말이 짝이 맞질 않다. 아침에 급히 준비하느라 미쳐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옷과 신발에 가려져 있어서 검은 옷 사내에게 들키진 않았다. A 씨는 시간이 부족함을 탓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에 한심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일을 그만둘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A 씨는 이 일을 그만두지도 못한다.   


  다음날부터 A 씨는 5시 40분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 후 6시 15분까지 현관문을 나섰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5시 40분에 일어나지 못하고 5시 55분에 일어났다. A 씨는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늦었다며 허겁지겁 준비한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도 거르고, 화장실도 들르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현관 앞에서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검은 옷 사내는 A 씨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통과!"를 외친다. A 씨는  검은 옷 사내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요즘 들어 아침을 계속 걸렀더니 배가 고파서 일을 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지 않았더니 출근하는 동안 신호가 계속 오지만 겨우 참고 출근한다. 양말도 안 신고 와서 사무실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지도 못한다. 며칠 째 그랬더니 구두에서는 냄새가 심하고 발 뒤꿈치는 까져서 아프다.


  회사는 이윤 추구를 최대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서 항상 고민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업무의 효율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서 Output을 올리거나, 인건비 같은 Input을 낮추는 방법을 사용한다. 마른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고 직원들을 들들 볶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획기적인 방법이 나오기도 하고, 회사와 직원들이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해야만 하는 과정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례에서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과정들부터 생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이 생략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결과는 같아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문제들이 곪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지게 되면 그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긴다. 위의 예에서 보면 '왜 화장실을 가지 않았느냐? 왜 양말을 신지 않았느냐? 왜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지 않았느냐?'와 같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얼마 전 기회가 있어서 임원분께 "지금 인원이 없어도 일이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 같지만 많은 프로세스들이 생략되고 있으며 조직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결국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네 말도 맞지만 회사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했고 넌 거기에 따라라"였다. 다시 말해 인원 충원은 없으며 현 상황에서 잘 해쳐 나가라는 뜻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영진 입장에선 자본을 더 투입해서(인원 충원) 나오는 Output의 향상은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서 크지 않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최고의 기업이 되기 힘들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경영진은 내가 꿈꾸는 것만큼의 회사를 꿈꾸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불량 및 재발방지 대책을 보고하라는 메일이 와있다. 


 


  나는 오늘도 물을 짜내야 하는 마른오징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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