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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Oct 09. 2019

앞으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마

알아서 잘해라!

  또 불량이냐! 넌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일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큰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소리가 너무 커서 사무실 내 수십 명이 듣고 있다. 누군가 실수를 해서 불량이 났나 보다. 어떤 실수를 했고 왜 불량이 났는지는 대화 내용 만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팀원이 실수를 했고 팀장은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회사에서 베포 한 자료를 보면 팀원을 혼내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괴롭힘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아무런 대화나 합의는 하지 않았다. 저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일까 아닐까 잠깐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앞으론 하나부터 열까지 내 확인받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그동안 내가 너한테 신경을 못썼구나. 네가 자꾸 실수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봐줄게'라는 의미 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정말로 모든 것 하나하나 확인받고 일처리 하기를 바라서 한 말일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 시간을 많이 뺏기고 다른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 것다. 그리고 원래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받고 진행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도 아니다. 평소 둘 사이엔 업무의 종류에 따라서 암묵적인 위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평소에는 문제가 없는데 실수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문제가 되는 것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팀장 확인받고 진행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것 까지 확인해줘야 하냐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 그리고 팀장 확인을 못 받아서 일을 진행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이 늦어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또 융통성 없이 일처리 한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얼마 안 가-아마도 1분도 안 걸릴지 모른다- 다시 예전의 '암묵적인 룰'대로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팀장도 모든 것을 다 확인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진짜로 그렇게 하라고 한말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 말은 그냥 화가 나서 한 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다가 다시 팀원이 실수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다음처럼 소리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확인받으라고 했지! 팀장이 지시한 것을 왜 안 해! 아니면 아무 일 안 생기게 일처리를 잘하던가!



팀장이 원하는 것은 알아서 잘하라는 뜻이다. 문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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