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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Dec 17. 2020

낚시인과 함께 살기

서로의 취미는 존중해주자, 주의다. 아웃도어파인 남편과 인도어파인 아내가 함께 살지만 각자의 시간을 이해해 준다. 다만, 그 취미가 본인의 시간과 공간 내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는 전제가 있다. 


남편은 낚시 마니아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홋카이도는 낚시인에게 지상 낙원이다. 몇 년 전부터 낚시에 발을 들이더니, 코로나로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자 낚시에 더 탄력을 받았다. 각자 어른이니까 취미 생활에 간섭하진 않지만 집안 살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즐겨달라 당부했다. 남편도 없는 용돈 쪼개가며 나름 최고의 휴일을 보내는 듯하다. 거기까진 참 평화롭다. 문제는 이 낚시가 가끔 우리의 공간, 나의 공간을 침범한다는 거다. 


이미 차 트렁크는 낚시 도구로 가득하다. 냉동실은 아이스팩과 징그럽기 짝이 없는 먹이들이 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다. 간혹 대량으로 잡아 오면 싱크대 한 가득 물고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손질하고 나면 버려야 할 내장이 한 뭉탱이. 싱크대 곳곳엔 비늘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도 하다. 욕실과 세탁실은 또 어떤지. 생선 비린내가 응축된 듯한 아이스박스를 닦고 말리고. 전용 속옷부터 방수복까지 세탁물이 한가득이다. 낚시는 낚아 올리면 끝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 생선 손질 다 하고, 도구며 옷이며 전부 빨아서 정리까지 마쳐야 그게 낚시의 끝이라고 열변을 토한 적도 몇 번이나 있다.


사실 개인의 취미니까 내 기준으로 그걸 하지 말라, 안 된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낚시가 물고기한테 중죄를 짓는다는 사실 빼고는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른 새벽부터 눈에 하트를 머금고 낚시터로 향하는 이의 모습을 보면 그깟 비린내가 뭐라고 잔소리하냐 싶어 진다. 남편도 이제는 생선 손질과 뒷정리까지 잘 계산해서 시간을 쓸 수 있을 만큼 (내 기준) 모범 낚시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인고와 타협의 시간을 거쳐 낚시인과 함께 사는(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내 숙명을 받아들였다. 생선은 사실 구이나 조림 말고는 요리해본 적이 없었다. 이참에 여러 가지 만들어나 보자 싶어서 없는 요리 실력까지 끌어 모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선 레시피를 늘려가는 중이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고등어를 식초에 절여 먹는 시메사바. 설탕-소금-식초에 절인 후 하루 이상 냉동하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시메사바 초밥까지 도전하는 무모한 용기. 


정어리는 크기가 작기도 하고 잔가시가 많아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대량으로 잡아오면 어떻게든 요리해서 먹는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대량 소비가 가능한 정어리 아히요와 정어리 덮밥. 내 나름 참 애썼다...


지금 냉장고 안에는 볼락과 임연수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재미삼아 '낚시인'이란 단어를 검색해봤는데, 아예 예문이 '많은 낚시인이 낚시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다.'이다...비단 우리 집만 이런게 아니였구나...!(의문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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