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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pr 15. 2024

결국 우린 소멸하고 말 거야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 요즘처럼 '출산'이 키워드로 떠올랐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시선을 알고 있다. 정치인들은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입모아 이야기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고도 앞뒤도 맞지 않은 채 손과 발이 따로 놀고, 아이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 마치 모두가 어린아이였던 적 없는 것처럼 울거나 떼쓰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간에 감출 수 없는 혐오가 느껴진다.


실수에 너그럽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세상. 남들이 하는 걸 다 하고, 갖는 걸 다 소유하기 위해 저녁 늦게 퇴근해서도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 삶. 그럼에도 결코 투명히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사는 시대의 일원으로서 나도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높여야 한다고 쉽게 말하면서, 아이 낳아 키우는 일을 후진 일처럼 여기는 사람을 볼 때는 분노한다. 감히 누군가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피차 선은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 일하는 엄마는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받고 일과 가정 사이를 저울질하며 어떤 식으로든 죄의식을 피하기 어렵다. 전업주부는 남편 월급에 빌붙어 사는 무능하고 속 편한 존재로 여겨진다. 모든 아이 낳은 여성을 통틀어 '맘충'이라 불린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브런치카페에 모여 시간을 갖는 여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맘충'이라고 하지만, 늦은 저녁 여느 회사 근처 고깃집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들이붓는 남자들을 보고 '파파충'이라곤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업주부를 자처하는 남자는 '능력없는 가장'으로 인식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아이 양육에 있어 모든 책임과 헌신을 바치고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모습만으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런 세상에 기꺼이 나는 엄마가 되었다. 이토록 힘든 세상의 일원을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것이다. 

어색한 만남에 대화거리를 찾는 어떤 이는 내게 물었다. '요즘 아이 키우는 일 너무 힘들다던데, 힘들지 않아요?' 

그럼 나는 되묻고 싶어 진다. 당신의 삶은 힘들지 않으냐고. 어차피 인생은 힘듦의 연속이라는 걸 알지 않느냐고. 증오하는 상사 밑에서 비위를 맞춰가며 일하고, 밤늦도록 성과를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잠깐의 플렉스를 즐기는 삶은 얼마큼 좋으냐고. 그 행복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느냐고. 묻고 싶어 진다. 


내게 질문한 이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다. 나는 살아보니 힘들어도 아이 하나 낳아 키우는 것만큼 남는 장사가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나만의 생각인지. 뜬구름인지. 

그들과 더 깊게 이야기 나누고, 설득해보고도 싶지만 이내 그만둔다. 이 깊은 마음을 낳아본 사람들은 눈빛만 스쳐도 아는 것일 테지만 굳이 마음 없는 이에게 꼰대처럼 보이기 싫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 못하던 것을 오늘 해 내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신비롭다. 뒤집기도 못하던 아이가 끙차 제 몸을 뒤집고, 일어나 걷고, 뛰고, 한글을 배우고, 이가 빠지고.. 그 모든 과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일은 철학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깊고, 멋지고, 값진 일이다. 


이런 말이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세상일수록 나는 출산이 대단한 스펙이라고 믿는다. '공감능력도 지능'이라는 말이 떠도는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을 향한 공감의 폭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넓혀준다.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세상이 좁아질 것이라 지레 짐작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물리적인 행동반경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항상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많은 시공간을 경험하고 준비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다. 


출산과 육아는 자신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모두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자 행위이다. 여전히 이런 생각에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내 생의 모든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 출산에 대한 이토록 감성적인 접근이 얼마나 먹힐 수 있을까 자조한다.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 자신의 삶 하나로도 벅찬 사람들은 아마 비웃으며 외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소멸하고 말 거다. 

이미 소멸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사람처럼 기꺼이 보람으로 아이를 키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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