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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하게 Apr 12. 2024

출간계약서가 도착했다

여둘톡이 쏘아 올린 작은 공

2020년 8월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다. 하루 중 잠시라도 혼자 등 돌리는 시간이면 눈물이 하염없이 주르륵 흐르던 날이 이어지던 때였다. 인생에서 도려낼 수 없을 존재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미워하며 지내는 일은 너무 고돼서 자주 지쳤다. 그럼에도 그 무거운 생각을 품고 있기엔 또 벅차서, 가족이 잠든 밤이면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쓰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억을 토해내는 일 밖에는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은 몸대로 무너졌고, 마음은 마음대로 병들었다. 그 와중에 독처럼 퍼지는 엄마를 향한 원망은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라 그렇게 울며 키보드만 두드릴 수밖에..


시작은 분명 미움이었고, 분노였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니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땐 그랬다. 나를 이 세상에 불러낸 '엄마'라는 존재를 미워하는 스스로를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시에 죄를 짓는 듯한 죄책감마저 나를 덮쳐왔다. 그래서 쌕쌕 잠든 아이 옆에서도 자주 죽음을 떠올렸다.


유년에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온전히 행복하기 어려웠던 가정사를 낱낱이 글로 옮기고 나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솔직하게 적어 내려 간 글 밑에 나와 같은 고통을 경험한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나 역시 위로를 얻었지만 고민은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무얼 얘기하고 싶은 걸까.


당신도 엄마를 버리라고,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오라고,
그래야 당신이 산다고
말할 용기가 그때는 차마 없었다.


1년은 브런치를 방치해 뒀다. 몸이 자주 아프기도 했고, 일단 엄마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기도 했지만 글을 쓸 마음의 여력은 없었다. 그 사이 아이를 열심히 키우면서 나 역시 조금 더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다시 2021년 '엄마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처를 주는지도 모른 채 너무 큰 상처를 안겨줬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기 싫었던 '나'의 일기였다. 그리고 다시 방치했다. 여전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어떤 얘길 해야 하는지 확실한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안고,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을 때 나의 최애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69화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데요'를 듣게 되었다. 오랜 시간 글쓰기를 훈련해 온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이야기와 글쓰기 팁을 들으면서 조금씩 내 안의 쓰기 본능도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산책하면서 몇 번이나 돌려 들었는지..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내보이라는 두 작가님의 진심 어린 조언에 힘입어 나는 다시 생각했다. 몇 달 동안 매일 아침 훈련하듯 산책을 하며 고민했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산책의 힘일까. 그사이 늘어난 체력의 힘일까. 여둘톡의 힘일까. 어쨌든 모든 시기가 중첩되며 내게 어떤 용기를 가져다줬다. '다시 써보자' 어떤 얘기를? 그때부터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를 떠나서 사는 삶',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하여 사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내게 필요했지만 어디에서도 찾거나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엄마보다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굳건히 고쳐먹고, 내 안에 가장 솔직한 이야기와 깨달음을 타닥타닥 적어내려 갔다. 월, 화, 수, 목, 금, 주 5일 성실하게 썼다.


그리고 2024년 1월, 여둘톡 첫 에피소드 '나대라'편을 듣고 나는 또 다른 결심을 하기 이르렀다. 그간 쌓인 원고로 투고를 해봐야겠다고 말이다. 작가님이 방학을 갖는 동안 나는 출간기획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선보이고 싶은 메시지를 갈고닦았다. 그럴수록 주제는 선명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었다. 결국 누군가에겐 그저 엄마와 등지고 사는 딸의 한탄 이야기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나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일단 나대보자!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우선 동네책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사서 읽고 출판사 이름을 메모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출판계가 어려워서 투고로 출간을 하기란 그 확률이 1%도 안된다는 말에 겁을 먹긴 했지만 일단 투고에 성공하건, 하지 않건 도전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면서.. 그렇다고 100군데씩 무작위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내 마음에 들어온 책을 만든 출판사들 몇 곳만 추려 기획서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출판하고 싶다고 생각한 곳에는 출판사 이름을 넣은 출간기획서도 따로 만들어 공을 들였다.


투고 후 원고를 검토해 보겠다는 기계적인 답변이 오거나 이틀 만에 거절 의사를 밝힌 곳도 있고, 원고는 감명 깊게 읽었지만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답을 받은 곳도 있었다. 나머지는 답변조차 오지 않았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포기한 채 다시 일상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헬스장에서 유튜브를 보며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데 내가 가장 첫 번째로 보냈던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놀라서 긴급 정지 버튼을 눌러버렸다. 기대 반, 두려움 반. 차마 메일을 바로 열어보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메일함을 열었다. 내 원고에 대한 검토를 끝내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책을 내자고 못 박은 내용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안도감과 기쁨에 눈물이 터져 나왔더랬다. 화장실에서 사연 있는 여자처럼 한참 훌쩍이다 나왔다.


그렇게 봄의 문턱에서 출판사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 이야기를 이미 충분히 읽으셨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계셨음이 느껴지는 귀한 자리였다. 누구와도 일방적인 토로가 아닌 깊은 공감의 대화를 나눈 적 없었던 터라 그 시간이 매우 얼떨떨하면서도 달콤했다.


"그러니까.. 책으로 만든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럼요. 괜히 만나자고 했을리가요." 하며 웃어 보이시는 대표님의 한 마디에 긴장이 사르르 녹았다.


그리고 오늘 나와 대표님의 싸인이 들어간 최종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이제야 더 실감이 나는 듯하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실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뜻깊은 날 벅찬 마음을 담아 오늘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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