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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pr 10. 2024

'엄마'를 놓으니 살아지더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여, 안녕히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신문기사나 알고리즘에 뜨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엄마 성격이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더 깊게 알아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 키워드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엄마를 떠올리게 되고, 그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결국 엄마를 이해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불행 해져서였다. TV에서 다정한 모녀관계 모습이 나오면 채널을 돌렸고, 속에선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만큼 정신과 신체가 모두 쇠약했던 시절이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내게는 꽤나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몸의 컨디션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5월 이후 아직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입원한 적이 없으니 수술 이후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매일 아침 걷기를 시작으로 운동량을 늘렸더니 무기력증도 많이 좋아져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그 힘으로 글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글을 통해 더 많은 이의 이야기와도 접할 수 있었다.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던 날, 도서관에 가서 나르시시스트와 관련한 책만 10권쯤 빌려왔다. 이제는 '나르시시스트'라는 키워드와 정면으로 마주할 힘이 생긴 것 같아서였다. 검색대에서 키워드를 검색해 찾은 책은 신기하게도 대부분 모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중 첫 번째로 펼친 책은 전문임상심리사 브렌다 스티븐스의 [나르시시스트 관계수업]이었다. 제목은 포괄적인 의미의 '나르시시스트'를 지칭하고 있는 듯하지만 거의 모든 내용은 모녀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장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탄생 / 2장 어긋난 사랑, 애증의 관계, 엄마와 딸 / 3장 통제된 감정을 알면 출구가 보인다 / 4장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 / 5장 상처를 직시하면 시작되는 건강한 관계 / 6장 스스로를 돌보고 회복해 가는 삶


목차의 대제목을 훑어보자마자 가슴 한 편이 뭉근하게 데워지는 듯했다.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목차에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락하지 않기로 결심하다'라는 소제목을 보고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덮였다. 홀린 듯이 목차에 적힌 페이지를 펼쳐봤지만 지금의 나처럼 부모와 완전히 독립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쓴 책답게 특정 사례를 에둘러 표현할 뿐이었다. 어째서 모든 마음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똑똑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놓고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에 있어선 늘 한 발 빼고 마는 것일까.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이 내가 지난 몇 년간 같은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 가장 절실한 말이었기에,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말이라 믿기에..


엄마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 이상으로 상처받았다. 완벽한 딸이고 싶었지만 늘 모자랐고, 지쳤고, 그래서 자주 죽음을 떠올렸다. 자식이 부모와의 관계를 이어나감에 있어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누군가에겐 믿어지지 않는 자극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도처에 많은 자식들은 분명 고통받고 있다. 용기 내 적은 나의 글 밑으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많은 이를 만났다. 


이젠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 엄마를 내려놓으니 살아지더라고. 나라는 사람은 엄마의 분신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었노라고. 

상처 입은 영혼들의 용감한 선례가 되고 싶다. 

본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떠올릴 만큼 괴롭게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미련 없이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혼을 갉아먹는 천륜은 더 이상 천륜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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