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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하게 Apr 08. 2024

학대도 사랑이었다고 하면

평행선을 달리는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기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는 가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학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시선을 돌려 제 3자 입장에서 본다면 함께 분노하고 안타까워할 이야기가 되지만 자신에 대입하면 본인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부모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이해를 당당히 요구하고, 자식들은 괴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를 기꺼이 이해한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를 원망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발 딛고 서 있는 땅을 뒤 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나의 부모, 그중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미워했던 단 한 사람 엄마는 홀로 나와 동생을 키웠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부채감을 느끼며 자라야만 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변하지 않는 전제였다. 무능한 데다 외도까지 한 남편, 병마를 이겨내며 두 아이를 길러냈던 여자의 삶은 고되다. 그는 살아내느라 너무 힘들었다. 울며 외발자전거를 탄 채 달리는 사람처럼 위태로웠고, 그래서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었다. 딸에게 기대고 싶었고, 위로를 얻고 싶었다. 때로는 분풀이도 하고 싶었다. 인생을 갈아 키워낸 만큼 보상받고도 싶었다. 그 설움을 아이가 알아줄 거라 믿었고, 알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고달픈 인생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삼았던 것, 딸을 집안의 희생양으로 삼아 정서적인 학대와 편애를 일삼았던 것, 동시에 엄마의 엄마이기를 바랐던 것, 딸이 생사의 고비를 맞이한 순간마다 더 밀쳐냈던 것을 '사랑'이었다고 퉁쳐버리면 안 된다. 아이 시선에서의 부모에 대한 이해보다, 부모에게서 아이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당연한 전제되어야 했음을 이제는 알기에..


아이 역시 외발자전거를 모는 영혼이었다. 너무 어렸고, 두려웠고, 사랑이 필요했다. 부모가 풍파와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바람 들지 않는 아랫목에서 그저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란 뜻이다. 아이는 불행한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먹고 자란다. 나 역시 위태롭게 달리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모진 세상살이에 엄마의 영혼은 자꾸 깎여나가 뾰족해졌고, 엄마 곁으로 다가갈수록 긁히고 피가 났다. 아이의 눈에 엄마는 늘 안아주고 싶은 동시에 안기고 싶은,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였다. 너무 원하고 사랑해서 결국은 미워져 버린 존재가 엄마였다. 


그토록 이해하는 엄마를 미워하기로 마음먹는 일은 아이의 영혼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은 아픔이었다. 도려낼 때마다 피가 철철 흘렀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미움은 심장으로 파고들어 자꾸만 세상을 등지고 싶게 만들었다. 도려내기 위해 글을 썼다. 토해내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갔다. 그래야만 숨이 좀 쉬어졌다. 


지금은 엄마를 서로 가 닿을 수 없는 레일 위의 존재로 인식한다. 더 이상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연민하지도 않고 각자의 레일 위를 따라 달릴 뿐이다. 결코 악의 없었던 학대의 시간을 '그것 역시 사랑이었다'는 감성적인 문장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독립된 존재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닿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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