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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19. 2024

칠칠맞은 엄마로 사는 게 더 편했던 이유

고백하자면 나는 좀 칠칠맞은(?) 엄마다. 더러운 꼴도 잘 본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늘 복잡한 것과는 달리 육아와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다. 정돈되지 않은 환경과 나 자신을 분리해 사고하는 능력이 발달되었다고나 할까.


임신 막달 즈음이 되면 거의 모든 부모들은 아이물건을 정비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아이가 사용할 모든 물건을 소독티슈로 닦고, 햇빛 샤워를 시키고도 모자라 장난감은 UV소독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귀차니즘이 많은 나는 출산 몇 주 전 배냇저고리와 손수건 등을 세탁한 게 전부다.

새로 들인 아이방 서랍장도 물 적신 행주로 먼지 정도만 슥슥 닦고, 아기 물건들을 넣었다.

크게 지저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깔끔함에는 관심이 없는 엄마 쪽이었다고나 할까?

'아가야, 세상은 원래 지저분한 거란다'라고 되뇌며 나름 합리화를 했던 것 같기도..


어쨌든 위생에 관한 한은 그다지 유난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모유수유를 고집한 것도 귀차니즘이 큰 몫을 차지했다. 단순히 젖병을 닦기 싫어서였다고 하면 너무 모성애가 없어 보이려나. 모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니 부연하진 않겠다.

모유수유가 분유보다 무조건적으로 편한 것은 아니었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모유는 때때로 가슴을 돌덩이처럼 무겁게 만들었고, 늘 수유패드를 착용해야하는 불편도 감수해야했다. 또 외출 시에도 유축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등 나름의 애로사항도 많았다. 100일도 되기 전에 전국으로 취재를 다녀야 했을 때는 미리 다음 날 먹을 모유를 유축해 보관해 두고, 취재 중에는 틈틈이 화장실에서 유축해 변기에 버리면서 일정을 소화했다. 공중화장실에서 유축하는 경험은 몇 번을 해도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유수유를 고수했던 건 아이와 같이 있는 동안에는 젖병 세척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어릴 땐 만일을 대비한 짐이 바리바리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난 참 가뿐하게 다녔던 것 같다. 여분의 기저귀, 손수건, 떡뻥 류의 간식 정도였던 것 같다. 극초반에는 여벌의 옷도 챙기고, 물도 챙겨 다녔으나 아이와 그리 긴 외출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작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챙기고, 들고 다니느라 진이 빠져 외출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걸 느끼고 난 다음부터는 모든 짐을 간소화해 다니기 시작했다.

물티슈도 입 닦는 용, 코 닦는 용, 손 닦는 용, 소독용 종류도 가지가지 많던데 아기 엄마들의 필수템인 물티슈도 난 거의 구입하지 않았다. 필요한 순간엔 손수건에 물을 살짝 적셔 만들어 쓰거나, 손수건도 여의치 않을 땐 카페 티슈를 적셔 사용하기도 했다. 대단한 환경애호가여서가 아니라 단순히 귀차니즘(물티슈 주문하는 것도 귀찮음)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쓰레기를 적게 발생시키는데 동참한 꼴이 되었다.

물티슈 한 장 없이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나를 뜨악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주변 엄마들도 있었지만, 난 나름 유니크한 방식으로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집은 '오늘의 집'이나 '집 꾸미기'에도 여러 차례 소개될 만큼 단정하고 어여쁜 집이었으나, 아이의 탄생과 함께 집은 온전히 아이 양육에 필요한 모든 것이 늘어져 있는 탁아소의 모양새가 되었다. 베이지톤으로 맞췄던 인테리어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알록달록한 미끄럼틀과 책장, 장난감이 집을 팔레트처럼 물들였다. 아이는 틈만 나면 서랍장을 뒤집어엎고, 싱크대를 헤집었다.


그럴 때면 난 더더욱 모든 것을 내려놨다. 잠시라도 어딘가에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라면 봉지를 꺼내 부스럭거리며 웃으며 날 쳐다보면 나도 함께 웃어주고 말았다.

덕분에 좁은 집 거실과 주방은 발 디딜 틈 없이 너저분해도, 그러려니 했다.

당시 내 정신 상태는 육아때문이 아니라 친정엄마와의 갈등과 건강이슈로 무너져있는 상태였기에 아이 양육에는 큰 에너지를 뺏기지 않기위해 본능적으로 노력한 결과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양육 그 자체에 너무 몰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 것만은 확실하다. 돌이켜보면 조카 돌보는 것 정도의 에너지로 아이를 키웠던게 아닐까

싶을만큼..


엄마들이 한 달 단위로 이유식 식단을 짜서 영양소를 배분해 가며 먹일 때, 나는 내 감에 의존해 엄마표 이유식을 조금 하다가 바로 밥으로 넘어갔다.


주변에 친구들이 "넌 꼭 첫째가 아니라 둘째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할 만큼 쿨한 엄마였던 듯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전혀 꼼꼼하지 않은..

물론 내가 쿨한 엄마일 수 있었던 데는 아이의 공이 가장 컸다.

워낙 순하고, 잔병이 없었던 아이라 칠칠맞은 나의 육아방식이 통했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뭐 하나한 번도 순탄한 적 없었던 나의 인생에 굴러들어 온 동글동글하고 몰랑한 존재는 그렇게 나를 너그럽게 만들어줬다.

갓난아이를 키우다 보면 호르몬 때문이라도 우울하고, 심정적으로 힘든 시기가 온다고들 하던데 나는 전혀 모른 채 그 시기를 지나갔다. 내 삶을 옭죄는 다른 영역에 비해 육아는 내게 놀랍게도 확실한 힐링을 선사했다.


새벽에 두시간 마다 깨서 자지러지게 젖을 찾는 아이에게 새벽수유를 하고,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누가 밤에 밤에 밟고갔나? 싶을만큼 온 몸이 쑤시고, 잠깐이라도 수유패드를 깜빡하고 외출했다간 가슴팍이 다 젖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등의 신체적 피로감도 내가 그동안 살며 느꼈던 정서적 피로감에 비하면 약했다. 오히려 실체가 확실한 고통과 난처함이었기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웠다.

누군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피로감을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고 여겼기에 더 편하게 지나왔는지도..


아이가 7살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칠칠맞은 엄마다.


겨울이니 태권도복은 하루 더 입자.

당근마켓에서 산 위인전 전집 책머리의 먼지는 못 본 척, 실눈 뜨고 책장에 넣는다.

주말엔 목욕도 시원하게 패스!


조금 칠칠맞으면 어때.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된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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