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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16. 2024

날마다 바뀌는 명품백?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

엄마의 품격은 '가방'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지만 굳이 마련된 자리를 회피하지도 않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7세 엄마들끼리는 1년에 서 너번 정도 모여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신다. 평소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닐 때와는 달리 모임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분주해진다.


떡진 머리도 감고 드라이도 정성껏 하고, 외출용으로 사두었던 옷을 고심해 고른다. 옷장에 고이 모셔뒀던 명품백도 이런 날에는 빛을 본다.


나는 32살 이전까지 명품백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결혼하면 샤넬백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언강생심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받을 형편도 못돼 꿈꾸지도 않았다.

첫 명품백은 괌으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시어머니가 사주셨다.


"요즘은 명품가방 하나씩 들고 다닌다던데, 너도 하나 사. 결혼할 때 못 사준 거 마음에 걸리더라. 유치원 엄마들 만날 때 들고나가."

그렇게 까만색 바탕에 테두리엔 빨간색 트리밍, 금장의 GG로고가 박힌 구찌 가방은 내 첫 명품백이 되었다.


그때는 아이가 어리고 엄마들과의 교류가 없을 때라 유치원 엄마들 만나는데 명품백이 왜 필요하지? 싶었는데, 유치원 입학 이후 첫 모임에 나가보니 다들 루이뷔통, 샤넬, 구찌, 셀린느, 디올 등등 각기 다른 가방을 하나씩 들고 나와서 새삼 가방을 사주신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더랬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세 번째 만남 이후부터 생겼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명품백이었건만, 모임에 나갈 때마다 종류별로 바뀌는 다른 엄마들의 가방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꽂히는 것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어찌 알고 유튜브는 명품백 하울 영상을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줬다.


'명품 입문백 best 10' , '명품백 하나만 산다면 이것!' '200만 원 대 명품백 추천' 등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하루에도 몇 개씩 영상을 봤다. 하루에 몇 천만 원어치 쇼핑을 하고 하울을 하는 유튜버도 수두룩했다. 일순간에 '벼락거지'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 내 옷장에 들어있는 옷, 가방은 모두 다 하찮게 느껴지고, 명품 쇼핑백을 잔뜩 들고 백화점을 누비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잘 준비를 마치고 누운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가방 이야기가 나왔다.

"저번에 모임 나갔는데 00 엄마는 또 가방을 바꿔 들고 나왔더라.. 이 아파트 사는 사람들 벌이가 다 빤한데 다 돈이 어디서 나서 그렇게 가방이 많은 거지?"

"너도 가방 갖고 싶어?"

"아니, 그렇다기보다 신기하더라고. 견물생심이 정말 맞는 게 자꾸 보다 보니까 나도 나갈 때마다 가방을 바꿔 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 하나 사줄까?"

"됐어~ 명품백 얼마인 줄 알아? 큭 어머니가 사주신 구찌백도 감지덕지야."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몇 달 뒤 내 생일날, 남편은 차 조수석에 루이뷔통 쇼핑백을 태운채 나타났다.

친구랑 점심을 먹고 데리러 온 남편의 차에 무심코 타려다가 소핑백을 보곤 너무 놀라 눈, 코, 입, 귓구멍까지 최대치로 벌어졌더랬다.


"미쳤나 봐. 이걸 어디 가서 샀어? 이거.. 뭐야. 진짜?"

어버버버 흥분해서 박스를 열어보니 자그마한 크로스백이 하나 나왔다.

남편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내 표정을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가 외출한 사이 남편은 딸아이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루이뷔통 매장에 대기를 걸고, 들어가 홈페이지에서 봐뒀던 가방을 꺼내 달라고 했단다.

"돈 쓰기 엄청 쉽더만? 내가 가자마자 이 가방 달라고 하니까, 아내가 사 오라고 시켰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니 그냥 선물할 거라니까 약간 '무슨 자신감이지 이 사람?'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더라" 남편은 한동안 국내 백화점 첫 명품관 입장 썰을 연신 풀어댔다.

나는 아직도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남편이 고른 가방은 다행히 무난한 디자인이어서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그렇게 내가 보유한 명품백은 총 두 개가 되었다.

"고마운데 이제 이런 거 사 오지 마. 나도 명품백 갖고 싶긴 했는데 막상 받으니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우리 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벌면 되지 뭐. 알았어. 앞으론 절대 안 사줄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는 남편이 또 얄밉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명품백이 두 개나 생겼으니 나는 기뻤을까?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라는 노래 중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짜증 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아니지/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짜증 나는 거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모임에 새 가방을 가지고 나갔을 때 느껴지는 은근한 시선을 느끼고 나니, 다음번엔 또 새로운 가방을 가지고 나가야 할 것만 같은 착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차피 1년에 한두 번 드는 가방인데, 사지 말고 대여를 할까? 별의별 생각이 한동안 내 머릿속에 뱅뱅 떠다녔다.

스스로 이런 생각이 분수에 맞지 않고, 구리다는 걸 알면서도 욕망은 자꾸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이 생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골몰해 봤다.

엄마들 중에 유독 명품으로 휘감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목걸이며, 귀걸이, 시계, 팔찌, 가방, 신발, 옷까지 내가 아는 모든 명품 브랜드의 물건들로 치장을 하는 건 물론, 손톱이며 헤어까지 늘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은연중에 그 사람을 의식했던 것 같다.


내 옷차림이나 매일 드는 같은 가방을 보고 무시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즉 '열등감'이었다.

그 물건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무의식의 반로였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나는 원래 가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 아니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우아하거나, 교양 있어 보이는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부러웠는가?'

- 아니오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사람을 위해 내가 몇 백만 원을 지출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 아니오

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수천만 원어치의 명품으로 도배한 그 사람에게 억하심정은 없지만, 만날 때마다 은근히 차림을 신경 쓰게 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친구가 가진 장난감이 갖고싶다고 떼 쓰는 아이에게 "너도 이미 좋은 것을 갖고 있잖아.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는거야."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엄마이면서 잠시나마 '명품'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돼 비교하며 자존감 낮아졌던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소중한 돈을 쓸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내가 존경하거나 닮고싶은 사람들은 전부 그저 생활과 품새가 단정하고 자세가 곧으며, 지혜롭고, 겸손한 말투와 생각이 온화한 사람이었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상에서 내가 무언가 지출해야 한다면 그런 모습을 위해서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짓고 나니 모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싼 옷을 사기보다 아무 옷을 입어도 태가 나는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한다.

떡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는 대신 머리를 감고, 외출할 일이 없어도 간단히 드라이해 단정한 헤어 스타일을 만든다.

화장품도 단계별로 잘 챙겨 바르고, 얼마 전부터는 괄사로 얼굴라인 다듬기도 시작했다.

다 늘어진 티셔츠대신 옷장 속에 묵혀둔 셔츠를 꺼내입고, 집에서도 괜히 진주목걸이를 해본다.

소소한 생활습관의 변화로도 얼마든지 우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으나, 나는 쇼핑을 따로 하지 않았다.

가장 단정한 옷을 꺼내 곱게 다리고 이미 갖고 있는 내 아이템들로 멋을 내볼 테다.

옷장에 특별한 날을 위한 무언가를 모셔둔 채 정작 일상의 하루하루를 대충 때우는 삶은 이제 싫다.

하루하루를 우아하게 살아낼 거다.

명품으로만 럭셔리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날마다 바뀌는 명품백? 이제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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