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안다고, 결혼을 앞둔 이에겐 상대의 가정환경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선 특유의 맑고 밝은 분위기가 풍긴다. 겸손하지만 자신감 있고, 실패에도 타격을 덜 받고, 빨리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들은 쉽게 분노하거나 흥분하지도 않는다. 안정적인 정서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온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인성적인 면에서 더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일 것이다.
가정환경과 성격형성의 연관성에 대한 이슈가 나오면 나는 유독 작아진다. 내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반박할 엄두도 나지 않아 우선 풀부터 죽는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가정환경이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논리에 따르면 슬프게도 나는 영영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는 때때로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과거의 나였다면 한마디 말에 가라앉아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한 줄짜리 세상의 전제에 굴하지 않기로 한다.
가정환경과 성격형성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친정엄마와의 절연을 선택한 나였다.
세간의 사람들이 쉽게 입에 올리는 그 전제가 틀렸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내는 중이다.
38시간의 진통 끝에 내 속에서 쏟아져 나온 딸아이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이상한 생각에 빠졌다. 탯줄과 연결된 채 내 가슴팍에서 앙앙 우는 이 아이는 혹시 '나' 아닐까?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우는 아이를 어르면서, 어렸던 과거의 나도 함께 다독였다.
온몸으로 아이를 껴안으면서 과거의 나도 함께 끌어안았다.
마치 내가 '나'의 엄마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조금은 이상한 망상으로 시작한 육아는 내게 묘한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칠칠맞고, 교육에 열성적이지도 않으며 때론 눈물 앞에서도 얄짤없는 냉정한 엄마였지만 괜찮았다. 내가 엄마에게 원했던 건 단 하나 '모자람과 실수에 용서를 구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아이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엄마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용서를 구한다면 아이는 언제든 엄마를 용서해 줄 것을 알기에 나는 최대한 힘을 빼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가까운 육아에 충실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한글이나 ABC 알파벳을 가르치는 것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려주는데 힘을 썼다. 숫자 1, 2, 3을 일러두는 대신 매일 아침 등원 전 'oo이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어디에 있지?' 물었다. 그러면 아이는 또랑 하게 답했다. '마음속에'
가끔 기분이 태도가 되어 아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만 날에는 아이를 꼭 안고, 사과했다.
"엄마가 아까는 너무 했던 것 같아. 그렇게까지 화 낼 일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나빴어. 반성해. 용서해 줄래?"
아이는 제 온몸을 내게 맡긴채 파고들며 당연하단듯 "응"하고 대답한다.
아이의 마음은 언제나 어른의 것보다 넓고, 맑고, 깊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우선 용서 구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또한 용서를 함부로, 너무 쉽게 구해서는 안된다.
용서를 구할 때는 몸짓으로, 말투로 진심을 다해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아이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용서를 구할 때 자책감이 너무 커 아이에게 버럭 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더욱 괴로웠다.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자연히 그런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다만,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냉정하게 지적하고, 단호하게 훈육하고 있다.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명목하에 아이를 방임하거나 무조건적으로 허용하지는 않는단 얘기다.
이 노력하는 것만으로 나는 아이와의 친밀감 형성에 많은 덕을 봤다.
노력하는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낀다.
누군가 어떤 순간에 자신을 '좋은 엄마'라고 느끼냐고 물어온 다면 이렇게 대답하련다.
아이가 내게 원하는 무언가를 정확하게 요구할 때 그렇다.
"엄마 내 유치원 졸업식 때는 꽃다발 대신에 사탕다발을 줬으면 좋겠어. 츄파춥스 콜라맛이면 좋겠고, 시나모롤 인형도 들어있으면 좋겠어. 색은 하늘색이 좋아. 부탁해."
어릴 적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어른들이 들어줄 리 없다는 걸 먼저 알았기에.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토록 정확하게 짚어낼 줄 아는 아이를 볼 때 나는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낀다.
20kg도 넘는 아이가 저 멀리서부터, '엄마는 나를 절대로 피하지 않을거야'라는 자신감으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달려와 와락 안길 때
무게에 못 이겨 뒤로 확 넘어가면서도 이 아이를 먼저 감싸는 나를 발견할 때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낀다.
토라졌던 아이가 색종이로 하트를 접어 '엄마 사랑해'라고 적어올 때
내가 썩 '괜찮은 엄마'라고 느낀다.
해맑고, 똘똘하고, 엉뚱하고, 때로는 싸가지 없고, 철딱서니도 없고,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뻔뻔한 딸을 볼 때 대체로 나는 내가 '좋은 엄마'같다.
해맑고, 똘똘하고, 때로는 싸가지 없고, 철딱서니도 없고,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딸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눈치 보지 않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막무가내 사고가 통하는 시기를 마음껏 누리는 것. 내 유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발칙함이기에.
언제나 나이보다 먼저 성장해야 했던 나는 7살 나이에 딱 맞게 자라는 아이가 그저 기특하고, 어여쁘기만 하다.
오늘도 7살 딸을, 7살 과거의 나를 뽀득뽀득 씻겨 보드라운 몸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잠들기 전 책을 읽어줬다. 좋은 꿈 꾸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고 볼키 스도 잊지 않았다.
하루도 잘 살아냈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30년 넘도록 과거의 기억에 발목 잡혀 괴로웠지만, 이제는 내 가정 안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 방에서 새근새근 잠든 딸은 자신의 7살을 분명 나와는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