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딸이 어느 날 오른손잡이로 거듭날 것을 선언했다.
한글 쓰기 연습도 오른손으로, 밥 먹을 때도 오른손을 쓰겠다며 맹연습에 돌입한 것이다.
계란말이에 케첩을 찍으려다 놓쳐서 식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밥풀도 젓가락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니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빠 닮아 왼손잡이라 고치라고 한 적도 없구먼, 무슨 바람이 불어 저럴까?
왜 갑자기 이러느냐고 물어도 아이는 그냥 그러고 싶단다.
남편은 본투비 왼손잡이였으나 어릴 적 어머니께서 손등을 때려가며 훈련시킨 덕에 지금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쓴다. 하지만 그 외에 공을 던지거나 가위질을 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는 여전히 왼손을 사용한다.
남편의 눈물겨운(?) 스토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딸에게 왼손잡이와 관련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었다. 시어머니도 아들을 그렇게 혹독히 가르쳐 오른손잡이로 만들어봤자 근본적인 본능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체득하셨기에 하나뿐인 손녀가 왼손잡이인 것에 대해서는 별말씀이 없으셨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알아버린 것이다.
자신이 친구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걸..
이어 아이가 또 물었다.
"나는 왜 이름이 두 글자야? 친구들은 다 세 글자인데. 나도 세 글자 이름 갖고 싶어."
"엄마가 너 뱃속에 있을 때 예쁘고 특별한 이름 지어주려고 아빠랑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네 이름 정말 멋진 뜻을 갖고 있고, 특별해."
최대한 다정하고 나긋하게 말해줘도 별 소용이 없었다. 마음이 아릿했다.
아이는 아마도 느껴버린 것이다. 어떤 종류의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그때 문득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 안 느껴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나는 일생을 '열등감 덩어리'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아이의 이름은 외자일 뿐 그다지 특이한 이름은 아니다.
반면 내 이름은 어릴 적 듣는 어른마다 "이름 참 예쁘네. 한글 이름이니?"라는 질문을 들었었다.
그때 나는 내 이름이 한글인걸 어떻게 아는지 신기했고, 당시 내가 생각하기엔 하나도 예쁘지 않은 이름을 왜 예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이름을 얘기하고 나서 이어지는 같은 종류의 대화 패턴이 늘 부담스러웠다.
반에 꼭 한 두 명쯤 있는 지혜, 은혜 등의 이름이 늘 부러웠다.
게다가 고1 때까지 뚱뚱한 편이었던 나는 살이 심하게 올라 이목구비가 살에 파묻혀 있었고, 종아리를 드러내야만 하는 교복차림을 하고 학교에 가는 일이 늘 스트레스였다. 아침에 교문을 통과하고 나면 교실로 가서 얼른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덧입곤 했다.
그뿐일까 가난하고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더불어 친구들이 다 신는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지 못하는 것도, 동방신기 덕질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도 다 나의 열등감 형성에 일조했다.
또래집단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그 시절 소녀에겐 꽤나 큰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왔던 가정환경은 삶을 사는 내내 '열등감'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실은 지금도 소소하게 피어오르는 열등감을 잔불 밟아 끄듯 늘 주시하고 있다.
알고 있다.
사회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주류에 속할 수는 없다는 걸.
또 주류에 속하는 것이 항상 옳거나 좋은 일만도 아니라는 걸.
'열등감 덩어리'인 나한테서 나온 아이가 열등감을 모르고 살 수 없을 테다.
그래서 아이에겐 뭐라고 말해줬느냐고?
"반에서 혼자 왼손잡이라서 속상했구나..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짐짓 덤덤하려 애쓰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엔 오른손잡이만 있는 건 아니야. 근데 네가 오른손잡이가 되고 싶다면 한번 연습해 봐. 하지만 엄마는 왼손잡이인 너 그대로가 좋아. 그리고 피카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도 다 왼손잡이였대. 왼손잡이라서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훌륭한 일도 다 해낼 수 있는걸"
아이는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위인 중 베토벤이 왼손잡이였다는 말에 반응했다.
"정말?"
"그렇다니까. 그리고 이름이 두 글자라 속상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세상엔 이름이 네 글자인 사람도 있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도 있고. 세 글자 이름만 정상인 건 아니야. 일단은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니까 살아보고, 네가 20살이 넘어서도 바꾸고 싶다면 그땐 너 스스로 바꿔도 좋아."
"세상에 이름이 네 글자인 사람도 있다고?"
나는 선우용녀, 남궁옥분, 독고영재 등등 온갖 네 글자 이름을 탈탈 털어 예시로 들고,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척갑자 동박삭 ~ 너스레를 떨며 이름이 두 글자인 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일러줬다.
그럼에도 한동안 주둥이를 부- 내밀고 있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왼손으로 밥도 잘 먹고, 글씨도 잘 쓴다.
예전에 나의 엄마는 내가 바깥에서 놀림받고 돌아왔다고 말하면 나보다 더 분노하고, 심지어는 그 아이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에게 경고를 하거나 싸움이 붙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난 더 불안해지고, 실은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실랑이였음에도 늘 일은 더 부풀려졌다.
그때는 분노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거라고 믿었다.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외부적으로는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외부의 평판으로부터 아주 민감하고 공격적이기까지 하단다. 그 모습 역시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이었다는 것도 불과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첫 '열등감'을 최대한 덤덤히 맞아주고 싶었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면 낮은 파도정도로 여길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구태여 살을 보태 분노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아이의 감정이지 부모의 감정이 아니기에..
'열등감'도 인생에 꼭 필요한 감정 중 하나라고 믿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해결을 위해 궁리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감정이니까.
나의 딸에게도 '열등감'은 필요하다.
다만 너무 높은 파도에 치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
오늘 저녁 왼손으로 불고기를 집어 먹으며 오른손으로 엄지를 치켜드는 딸아이를 보며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