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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29. 2024

불행보다 먼저 불행해져 버렸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 1시간 외출하면 하루를 쉬어야 하는 정도의 컨디션 난조 시기는 지나간 듯 하지만 여전히 약골인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 전부터는 웨이트를 시작했다. 내게 헬스장은 러닝머신에서 5 정도로 40분 정도만 걷고도 헉헉대며 나오는 곳이었는데, 남편에게 웨이트 기구 몇 가지의 동작을 배운 다음부터는 나 혼자서 3세트씩 세 개의 기구를 돌아가며 운동하고 유산소도 겸하고 있다.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까. 등 운동을 위해 기구의 바를 잡아내리는데 오른쪽 아랫배에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뭐지?' 처음 이후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에도 잇달아 통증이 몰려왔다. 

너무 강렬한 아픔이었고, 부위가 명확해서 요로결석인가? 자궁근종인가? 짧은 순간에도 여러 생각이 불똥처럼 파바밧 튀어 올랐다. 


집에 와서도 오른쪽 아랫배의 감각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기침을 하거나, 앉았다 일어설 때, 누워서 자세를 뒤척일 때 통증은 반짝 찾아오곤 사라졌다. 작년 5월 이후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입원한 적이 없으니 이젠 때가 되었나 싶었다. 어쩐지 잠잠하더라니.. 또 시작인 건가. 


예고 없이 퍼붓는 스콜을 만난 것처럼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것 같고, 목덜미를 더듬으며 열이 오르진 않는지, 오한이 느껴지진 않는지 체크하며 시간을 보냈다. 놀아달라는 조르는 아이도 외면한 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기다렸다. 내 몸이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을 말이다.


다행히 고열과 구토를 동반한 오한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자는 내내 기분 나쁜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날이 밝자마자 산부인과로 향했다. 오른쪽 아랫배 부근이라 혹시 자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오늘따라 날은 이리 춥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지..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유독 우중충하고, 불길했다. 


얼마 뒤 집 근처 여성의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대기 환자가 없어 곧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증상을 말하니 의사는 곧바로 초음파를 시행했다. 침대 위쪽에 마련된 모니터에는 자궁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그란 무언가가 있는 것도 같았다. 얼룩덜룩한 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며 혹시 내 몸에 나쁜 무언가가 생겼을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깨끗한데요. 자궁 내에 물혹도 없고, 양쪽 난소도 정상입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긴 한데 심한 정도는 아니고요. 배란 징후도 없네요. 장 쪽의 문제일 수 있으니 내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통증을 느끼고 나서 제일 먼저 산부인과로 온 건, 막연히 부인과적인 문제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배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내게 불리한 현상임에 틀림없으니까. 담관을 잘라내고 소장과 십이지장을 이어 붙이는 대수술을 받은 이후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나 여러 증상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에서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고 나서 나의 불안도는 더 높아졌다. 근처 내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결석이라도 생긴 걸까. 수술 부위가 막힌 걸까. 별 것 아닐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미 큰 병의 진단이라도 받은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처음 방문한 내과는 검진센터도 함께 운영 중인 곳이라 곳곳에서 내시경 하는 환자의 웩웩거리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함은 극도로 치달았다. 덩달아 아이도 불안했는지 내 옆에 꼭 붙어 앉아있었다.


곧 내 차례가 되어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자 침대에 누워보라 하곤 배 이곳저곳을 눌러보기 시작했다. 


"아파요? 여기는, 여기는요?" 어찌 된 일인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주로 통증이 언제 느껴져요?"

"자세를 바꾸거나, 재채기나 기침을 한다거나 할 때요."

"언제 처음 느꼈다고요?"

"어제 근력운동 하다가..."

"그냥 담 결린 거예요."

"네? 아니 제가 몇 년 전에 담관 쪽 큰 수술을 받아서.. 그게 혹시 연관되어 있진 않을까요?"

"담낭은 훨씬 위쪽에 있어요. 절대 여기까지 안 내려와요. 근력운동하다가 어깨나 등이 뭉치는 것처럼 배도 뭉칠 수 있어요. 장이 문제였으면 이렇게 눌렀을 때 안 아플 수가 없어요."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근육 이완제를 3일 정도 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 


불현듯 민망함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어제부터 그렇게 초긴장 상태로 중병이라도 걸린 사람인양 행동했는데, 고작 담 결린 것이었다니..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두려워했던 걸까. 


걱정하던 남편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더니 수화기 너머로 황당하다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나도 멋쩍어 같이 웃고 말았다. 


"아니 진짜 기분 나쁜 통증이었어. 난 자궁에 혹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니까.."

"알겠어. 어쨌든 별거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하네. 얼결에 자궁건강도 확인하고.."



 

오늘 있었던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직 건강에 대해 자신이 없는 내가 아주 작은 자극에도 얼마나 곱을 더해 반응하는지.. 반나절 동안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경험 속에서 나약함을 이렇게 발견해 버린 것이다.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보다 먼저 불행해져 버리다니... 스스로가 어리석지만 한편 가엽기도 했다. 너무나 큰 다행이었고.


어쩌면 나는 불행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행복에도 잠재된 불행이라는 막연함에 지분을 내어주고 있는지도.. 그래서 낌새만으로도 드러누워버리는 자해공갈단처럼 우습게 행동해 버린 걸까. 


다가올 미래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인데 왜 그리 행동했을까.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이해하기에 안타깝기도 한 하루였다. 마음먹은 대로 지키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래도 다짐해 본다. 벌어진 상황보다 더 큰 상황을 상상하지 않기로. 그래서 눈앞에 펼쳐진 오늘을 좀먹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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