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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말을 하면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의 그 문장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1. 위기에 강해지는


문제가 생길 때 존재감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J피디가 그런 인물. 문제를 해결하고 새 판을 짜야할 때 강해지는 그는 전형적인 피디 스타일이라기보다 행정가나 군대의 사령관이 더 어울린다고 할까. 시청률이 저조해 프로그램의 판을 뒤집어야 할 때 등판한 J피디. 그는 주특기를 발휘해 방해 요소를 파악한 후, 그것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든 mc, 조연출, 작가 같은 사람의 문제이든 머뭇거림 없이 속도전으로 처리해갔다. 빠르고 단호하게. 혼자서 결정짓는 방식이 독단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치는 바람에 팀 전체가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너무해'라고 욕하는 사이 프로그램도 제자리를 찾아가 드디어 루틴대로 매주 자연스럽게 녹화를 이어갈 수 있는 '평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J피디는 그때부터 급격히 프로그램에 흥미를 잃고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몰아치던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그는 위기 때 힘이 나고 반짝이는 사람.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다.   



#2.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가?

폭풍 같은 개편을 거치며 독불장군의 인상이 강하게 남은 J피디. 그와 밥을 먹다 '죽으면 자녀들에게 어떤 부모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별 기대 없는 질문에,


"그리운 아버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상상 못 한 대답이었다. 훌륭한 아버지, 성실한 아버지, 돈 많은 아버지,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버지의 상이 얼마나 다양한데 안 어울리게 '그리운 아버지'라니. 지금껏 독선적이고 뻣뻣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운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는 대답에 사람이 달리 보였다. 혹시 내가 오해한 걸까. 회사라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다 보니 캐릭터가 바뀐 것일까. 아니면 원래 속마음은 다른 사람이었을까.  냉랭하고 독선적인 사람 속에 '어떻게 낭창낭창한 그리움이란 '을 키우고 있었던 걸까. '그리운'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꽂히고 말았으니. 한껏 흉보고 미워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3. 그립다 말을 하면

 '그리운'이란 어떤 감정일까. 좋아하는, 사랑하는, 보고 싶은,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마음. 한 송이 꽃 속에 겹겹이 감춰둔 마음.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는데 갈수록 긴 여운이 남는 마음. 뭐라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그립다' 말을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내게도 있다.


나의 할머니. 그 시대 드물게 무남독녀로 태어나 남녀차별은 안 하셨지만 맘에 드는 손주만 챙기며 편애하던 할머니. 자식들로 속 썩을 때도 자신의 행복을 최고로 여겼던 '할머니 같지 않은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편애하는 손주 중 하나였던 나는 할머니한테 갔다 오면 세상 잘난 사람이 된 것처럼 가슴이 빵빵해지는 기분이 었다. 시간이 지나도 함께기억이 생생한 할머니.

 또 그리운 이는 서른의 나이로 일찍 하늘나라로 간 이모. 며칠 전 엄마가 보관해둔 이모의 엽서를 넘겨받으며 다시 그리워졌다. '짱아 이모야'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엽서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전학도 시켜주고 방학 숙제도 도와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표 나게 사랑하되 잘못하면 화끈하게 혼내던 미모의 이모. 손수 수놓고 염색한 손수건만 들고 다니던 깔끔한 성격의 이모는, 아픈 몸으로 내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병세가 악화돼 하늘 나라로 떠났다. 문득 떠오를 때면 이런 순간엔 이모가 있었으면 이랬을 텐데 상상하게 되는 그리운 사람이다. 그리고 얼마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도 그리운 이들의 명단에 추가되었다.  '그립다' 말해도 돌아오지 못할 들이지만 어떤 순간  내 기억 속에 떠오를 때면 그들과 세월을 같이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아버지의 해방일지

얼마 전 읽은 소설 <아버지의 해방 일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하는 소설은 빨치산이자 빨갱이의 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어느 날 전봇대에 부딪혀 죽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겪는 며칠간의 이야기다.  평생  철 지난 이념을 껴안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 매번 사람들한테 속으면서도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겠냐'가 십팔번인  아버지. 딸의 눈에는 철 지난 사상가이자 오지랖 넓은  사람뿐인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아버지와 얽히고설킨 사람들을 만나며 외면했던 아버지를 알아간다.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라며 부정했던 아버지와 닮아있는 자신이 결국 같은 결의 사람이었음 인정하고 '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라는 말로 소설은 끝난다.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어느덧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이 된다.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5. 그리운 사람으로 남기를  

점잖은 듯 보이는 '그리운'은  이토록 파장이 큰 감정이었나. '사랑하는' '존경하는'에 전부 다 담아지지 않는 '그리운' 이란 감정은 강렬하진 않아도, 내 시간 속에 '함께'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 묘한 감정인 것 같다. 마치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좋은 말들도 많지만, 나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면 J피디가 말한 것처럼 '그리운' 엄마로 남았으면 좋겠다. 얄밉고 독선적이J피디가 일러준 '그리운'이란 감정. 나의 빈자리에 '그리운'이란 씨앗을 남겨 놓고 싶단 생각이 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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