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uisKurts Nov 08. 2020

하루 인생을 두 번 사는 방법

무의미한 하루를 버리고 소중한 하루를 담다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 끝없는 두통이 전해졌다. 아무리 발버둥 치려고 고개를 젓고 약을 입에 때려 넣어도 두통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찌릿 거리는 두통이 찾아와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좋은 사람과 유쾌한 이야기를 할 때도,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하염없이 온몸을 짓눌렀다.


    더불어 의욕도 사라졌다.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 느껴지는 일락(逸樂)도 무의미해졌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집중을 하려 꽤나 애쓰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두통 때문에 병원을 갈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조금 더 지켜본다. 그러기를 일주일 이윽고 사태가 터졌다.


     성장통인 것일까? 수도권에 올라와 혼자 살기를 경험한 것이 어느덧 4년. 자그마치 4년이다. 외로움을 느낄 단계도 지나간 것 같은데 옆구리가 시려서 그런 것일까. 옆구리가 시린 것 치고는 이런 통증은 말이 안 된다. 아, 요 근래 이직한 직장에서 느낀 스트레스 때문인 걸까. 그것도 말은 안 되는 것 같다.


     때 마침 코로나가 터지고 온 직장은 생기를 잃었다. 한순간에 백수가 되어버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아직 직장을 뛰쳐나온 것은 아니다. 어떻게 어렵게 들어간 곳인데!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가 지속된다면 언제까지고 장담을 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때려치우고 나오고는 싶지 않다. 그런데 일단 무급 휴가를 가라고 한다.


     다급히 인터넷을 검색했다.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끊고, 가장 빠른 시점에 갈 수 있는 시간대를 예약했다. 이때 아니면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돈은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하는 것이 맞겠다 싶다. 평소 타고 싶던 차량을 렌트하고 숙소까지 바로 예약했다. 당장 내일모레 출발이다.          






     3박 4일의 여행 계획을 잡고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나버렸다. 그게 더 심적으로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까지 와서 시간에 구애받으며 마음이 급한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원하는 책을 준비해 원하는 시간에 가고 싶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 만큼 시간을 할애하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출출해지면 근처 봐 둔 음식점에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끝내주는 차 한잔까지 마시면서 아무 생각 없이 혼자를 즐긴다.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붙잡고 있는 핸들은 고독하나 고독하지 않다. 고속으로 달리는 SUV 차량 안으로 진한 배기음이 울렸고 그 울음마저도 고독함을 더해준다.


     사진을 원 없이 찍었다. 지금, 그리고 이 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한번 돌아올 날이 됐을 때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평소 자주 찍지 않던 셀카를 찍고, 낯선 풍경이 낯설지 않게 찍고 싶어 앵글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러다 원하는 사진이 나오면 흡족하게 웃고 사진을 몇 방 더 찍으면서 가을 정취를 느낀다.


     혼자 여행은 외롭지 않냐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여기 오는 대다수의 사람이 함께이고 고독보다는 어울림을 느끼러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법 먹음직스러운 음식적은 대게 2인분 이상이 돼야 주문할 수 있었고 혼자는 또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니 혼자 오는 게 이해가 안 될 법도 하다.


     고기 무한 리필 집을 방문하니 1인분은 5천 원을 더 추가해야 한다기에 흔쾌히 그러겠다 답했다. 지인이 추천해 준 곳인데 처음 주문하고 기다리는 내내 반신반의하며 기다리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정도면 만원을 더 줘도 아깝지 않은 정도인데! 라며 만족스러워했다. 혼자 고깃집은 처음이고, 그리 유명한 음식점을 혼자 갈 일은 더더욱 없었는데 어쩌면 제주도의 ‘설렘’이 용기를 자아냈으리라.


     여행을 하는 내내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신기하게 혼잡하게 돌던 속세를 벗어나 잠깐이지만 아무 사념 없이 즐기는 여행은 고통마저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산책 후에는 아메리카노와 브런치를 먹었다.     


     돌아와서 휴대폰을 열어 수백 장 찍혀있는 사진첩을 조심히 열었다. 하나씩 사진을 열며 지난 나의 여행을 생각한다. 이때 나의 감정은 어땠는지, 내가 왜 여기를 가고 산책을 하면서 마음의 정화를 펼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좋은 감정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글귀로 옮겨 적었다.


     글을 적는다는 건, 나의 이야기를 담아 나의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지나친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무기력하고 힘들 수 있다. 주변이 혼란스러워 당최 무언가를 할 기운도, 상황도 꾸려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이야기를 적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마음이 정화되기 시작한다.


     고독함은 부정적인 의미나,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고독이 주는 힘은 지치고 기운이 없을 때는 긍정의 힘으로 나타나서 혼자 사색을 즐기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원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무기력감을 느끼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면 생각 정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 매개체가 사진이든, 글이든 혹은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림도 좋다.


     인생에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그것을 얼마나 유연한 태도로 극복할 수 있느냐는 개인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생 2회 차를 살고 싶다면 나의 이야기를 담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전 03화 저는 재능이 부족한 열세 살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