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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Nov 07. 2020

저는 재능이 부족한 열세 살입니다

실패할까 두려워 도전을 못했어요

내 유년기는 참 다사다난했다.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부모님께 혼나던 일들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심지어 공부와도 담을 쌓고 지냈었다. 부모님이 오죽하면 '친구 아들은 김치도 잘 먹는다.'며 친구 아들과 김치 가지고 비교하는 것도 싫어해서 되려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들었다. 말만 안 들었으면 참 다행인데, 그 나이에 워낙 고집은 세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신경질 부리기 일쑤였고, 심지어 왜 이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는지 잠깐만이라도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혼자서 저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다.


참 신기한 게, 내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은 소설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어떤 친구는 속독으로 한 권을 40분 만에 읽어서 하루에도 수 권씩 읽는 아이들이 허다했고, 심지어 만화책은 10분 내외로 읽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어느 순간 그 친구들을 따라서 수업시간에 몰래 보는 맛을 느끼며 학교에서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당시에 특별히 대단한 소설이랄 것 까지는 없었고 판타지류 소설들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


갑자기 괴력이 생겨 남들보다 훨씬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손에서 마법이 생성되어 적을 무찌르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그 소설 주인공 안에서 읽는 나는 마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판타지 세상을 뛰어놀고 있었다. 그 계기를 시작으로 나는 조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아이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흥미로 가득한 소설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동네 작은 책방에 쪼그려 앉아 책을 한참이나 읽고 서성이다 가곤 했다. 돈도 없던 어린아이라서 많은 책을 빌려갈 수 없던 입장이었지만,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책방이 집 앞에 있어서 언제나 흔쾌히 책을 읽고 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이따금씩 만화책을 빌려갈 때면 한 두 권씩 더 무료로 빌려주셔서 읽는 내내 너무나도 행복함이 있었다.


빌려온 책을 가져와 집구석에 쪼그려 앉아 이불로 무릎을 덮고 그 위에 베개를 올린 채 책을 하나 더 얹고 하염없이 책을 읽었다. 앉아서도 읽었다가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도 읽었다가 그러다가도 안되면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읽었다. 부모님이 밥을 먹으라고 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은 그 흔한 2G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집에 오면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는, 혹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많지 않았다. 친구들 집 번호를 달달 외워 만나고 싶은 친구에게 집 전화를 통해 전화해서 몇 시에 만나자며 약속하고 만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전화 포트에 꽂아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하다 보니 인터넷 요금이 많이 나와서 혼났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글을 읽다 보니 어느덧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조금 간과하고 있던 것이 글을 읽는 것과 쓴다는 것은 사실 맥락부터 근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무작정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든 가상의 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이며,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림을 그릴 때면 나도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나고 열네 살이 되며,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간 준비한 자료들을 토대로 글을 처음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초도 원고 글자 수가 최소 5천 자는 되어야 했는데, 5천 자의 기준은 한글 워드 파일을 기준으로 세운다면 3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이었다. 많지는 않은 분량이나, 당시 이제 갓 중학생에 입교한 '중딩'이 그 정도의 내공을 이뤄내기란 가히 쉽지는 않았고, 글을 작성한다는 건 너무나도 막막하고 막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처음에는 시놉시스 같은 것도 전혀 구상하지 않고 시작해서, 글의 깊이가 무딘 것도 무딘 것이었지만 매번 내용을 일관성 있게 짚고 작성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글의 맥락은 삐뚤빼뚤하기 일쑤였고 도무지 읽고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을 수 없는'글이 탄생해버린 것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페이지 '에프월드'와 지금은 '문피아'로 변한 '조아라'에 원고를 올리며 글을 작성해 나갔다.


참 고맙게도 당시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은 내게 항상 재밌다며 댓글도 남겨주고 잘 읽었다며 감사의 표시를 해 주시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조아라에 원고 67개를 기고하는 동안 조회수 47만을 일주일 만에 찍었는데, 에프월드에서 열심히 작성했던 글을 끌어와 조아라에 글을 올렸었는데 갑작스러운 조회수 폭탄에 너무 놀라버려서 글을 모두 삭제했던 안타까운 기억도 있다.


그렇게 글을 작성한 지 5개월 정도 지날 무렵 소설을 올리는 페이지에는 당시 연참대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매일 2개의 소설(5천 자 이상)의 글을 올리며 100일 동안 꾸준하게 글을 작성하는 대회가 열렸다. 당시 한 명의 '판타지 소설 작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상황에 못할 건 없겠다 싶어 대회 참가 신청을 눌러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꼬맹이가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가능하다면 과거의 나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에프월드'홈페이지가 폐쇄되어 더 이상 글을 찾을 수는 없지만 당시 두 개의 소설을 연재했다. 타이틀 '백작 레스크'와 '천공의 아이랜드(Island)'라는 타이틀로 두 개의 소설로 대회에 참여했다. 물론 한 개의 소설로만 글을 올리는 게 편하지 않으신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천공의 아이랜드는 이미 연참대회 이전부터 연재하고 있던 소설이었고 이미 당시 100편이 넘던 상황이었기에 그 연재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천공의 아이랜드만 계속해서 100일 동안 써 내려가기엔 300편이 넘는 대 장편이 될 소지가 있었기에 그 상황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분할 연재를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시, 소설, 수필, 에세이 어떤류의 글이 되든지 간에 상관이 없었고 5천 자가 넘는 소설 2편만 게재하면 됐다.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장르 자체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글을 작성하는 이야기가 많았기에 학업 생활도 병행해야 했기에 글을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학교에서 습작 노트를 펼쳐놓고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었고, 역사, 수학, 물리 이런 과목들은 모두 내팽개쳐버린 채 오롯이 국어 수업만 열심히 들어버리는 지극히 '괴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실제 이때 학업 성적은 정말 중학교 때와는 형편없이 달라졌고, 국어 과목을 제외한 과목은 5~60점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일 동안 연참을 하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던 이유는 부모님께서도 드디어 우리 아이가 뭔가 집중해서 일을 한다는 생각에 항상 지지해주셨고, 부족한 것을 훨씬 잘 알고 계셨겠지만 옆에서 든든히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원했다기 보다도 무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혹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꿈꾸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라는 의미로써 그간 나를 질책하셨지 싶다.


100일을 보내는 내내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정이 되기까지 한 편의 글이 완성되지 못해, 정말 한 시간 정도를 남겨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작성하던 때도 있었고 밀린 과제처럼 주말이 되면 하루에 3~4편씩 뽑아내서 평일날 못 쓸 것을 대비해서 밤낮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소설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천운인지, 100일을 연재하는 내내 못쓸 것 같은 상황을 견뎌냈고 그 뒤의 조회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뒤따라오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총 도합 200편을 찍는 내내 조회수는 60만을 상회했고, 당시 부상으로는 MTB 자전거와 정말 가지고 싶었던 작가의 책 전집을 받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MTB 자전거는 이미 오래 사용하다 보니 녹이 슬고 그 효용가치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받았던 작가의 책 전집은 여전히 집구석 어귀에 전시되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지극히 능력도, 재능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 뛰어난 감각적인 글머리도 없고, 공부를 잘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무언가를 분석하고 연구하려는 노력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오롯이 스스로 한 번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면 끝까지 해보는 끈기 하나로 목표를 달성했다.


모든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나고 재능이 넘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은 꼭 한 번 도전해봐야 한다. 실패할까 두려워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꺼내봐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도전이 커다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더 뛰어나고 대단한 네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 인생은 겨우 이제 시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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