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끝인 줄만 알았다

끝인 줄만 알았던 좌절의 순간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by LouisKurts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숨소리는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했고 눈 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당최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한없이 펼쳐진 끝 모른 길 위에 나는 나 자신과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땀방울이 이마에서부터 조르륵 떨어져 눈썹을 타고 흘렀다. 눈 앞을 가리는 시야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손등으로 힘겹게 눈물을 훔치고 다시 눈을 떴다.


할 수 있다는 다짐만 수십, 수백 번째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벌써 1km 이전부터 무릎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쿡쿡 찌르는 얕은 통증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은 마치 공구로 무릎을 치는 듯한 강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페이스를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고 다리는 어느 순간부터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숲은 어찌나 푸른지 속이 끓는 마음도 모르고 바람은 또 왜 이리 선선한지. 날도 쓸데없이 너무나 맑다. 중앙선 부근에 곧게 그려진 노란색 중앙선을 왼발 기준으로 맞춰서 앞은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바닥만 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왜소한 체구의 어르신이 지침 없이 뒤에서 홱! 하면서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숨을 헙! 들이켜 마시면서 페이스 조절을 잃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따라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젖 먹던 힘 까지 끌어올렸다.


얕은 오르막길도 때로는 그 어떤 장애물보다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반환점을 돈 지금 아까는 그토록 달달했던 내림막이 이토록 서럽게 미울 수가 없다. 우왕좌왕 뒤섞여 달리는 인파들 사이로 길을 헤치며 비집고 들어갔다. 몇몇은 이미 지쳐 탈진한 상태로 갓길을 걸으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마지막 결승점을 앞둔 코너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으로는 환호성과 시끌벅적한 소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회자의 열렬한 응원이 곁들여진 마이크 소리가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마라톤 길목 양 옆으로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을 곁들여 주었다. 어느 순간 아픈 다리도 잊을 만큼 짜릿함이 온몸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캄캄하고 어두웠던 길에 밝은 빛이 내려쬐듯 세상이 넓게 보이기 시작했고 전방 커다란 전자시계에는 초침과 분침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꼴깍 넘어가듯 숨을 헥헥거리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돋기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1분 1초라도 줄이겠다는 마음인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50m, 30m, 10m 전광판에 찍힌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할수록 없던 힘이 나기 시작했다.


"10023번 선수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소리가 귓가에 꽂히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던 찰나 누군가가 무작정 건네주는 물을 받아 뚜껑을 다급하게 열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면서 뒤에 힘겹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한참 쳐다봤다. 나도 저렇게 달렸겠지? 저게 뭐라고 저렇게 달리게 되는 거냐.


한참을 허탈하게 웃다가 옷을 털며 일어났다.


"요, 완전 죽을상인데."


"니 표정이나 보고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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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대회에 참여한 친구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내 표정을 보면서 웃자, 본인 표정을 못 보고 놀리는 게 우습다. 한참을 서서 이야기하다 상패와 간식을 나눠주는 곳으로 이동해 '참가상' 명패를 받았다. 사실 대외 입상과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간식으로 나눠준 초코바를 받고는 급히 당이 떨어진 기분에 쩝쩝대며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여의도 공원 잔디밭에 앉아 한참을 쉬다 보니 선선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그토록 부산했던 공원 주변은 하염없이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수천 명의 인파가 북적였던 길목은 점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2019년은 5km 마라톤을 시작으로, 10km 마라톤 다섯 번을 참가해 총 6번의 마라톤을 달렸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건 동일하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점을 맞닥트리게 되고 그 한계점을 극복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주했던 경험은 없다. 첫 두 번의 10km 마라톤에서는 아픈 줄도 모르고 과하게 달리다 보니 왼쪽 무릎이 크게 상해 마라톤 이후 한 달 넘게 고생을 했던 기억도 있고, 발바닥과 무릎이 아파도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잔부상을 달고 대회를 마감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번 달리고 나면 끓는 희열과 느껴지는 만족감은 그 아픔을 상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간혹 주변에서 왜 굳이 무리해가며 다쳐가면서도 운동을 하냐고 묻는데, 공교롭게도 항상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비슷하게 답한다.


"도전이 없으면, 성취가 없으니까요."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나는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해낼 수 없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실패에서도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작은 실수들에서 받은 깨달음은 큰 영감을 주고, 더 큰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되기도 한다. 5km 40분 조차 달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10km 52분대를 찍은 것은 어찌 보면 참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스스로에게 굉장한 자극이었다.


어쩌면 오늘 시도하는 도전들이 무의미하고 건조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행동한다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시도해보지 않고는 그 어떠한 결과도 알 수 없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비로소 나는 결승선을 통과했었다.


쟁취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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