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전날, 엄마가 염색을 한다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입원 전날, 엄마가 염색을 한다

엄마가 허리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십 년간의 농사일과 이제는 나이 든 몸으로 젊어서 일했던 감각으로 계속 일을 하다 무리가 온 것이다. 엄마가 수술 날짜를 잡자, 수술비에 도움을 줄 수도 없던 나는 엄마가 퇴원 후, 한 달에 한 번 고향집에 내려가 일주일 정도를 머물기로 마음먹었다.


수술받으러 병원으로 입원하러 가는 전날, 엄마가 염색을 하시겠단다. 읍내에 사는 큰언니가 염색약을 사 와 시커먼 염색약 가루와 계란 노른자를 섞어 염색약을 만든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수술받으러 가는 엄마는 힘이 없다. 허리가 아파 앉아있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언니가 염색약을 바르는 내내 맨바닥에 앉아 묵묵히 견디신다. 머리가 까맣게 염색되는 30분 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혼자서 머리를 감으신다. 하얀 머리의 엄마는 머리가 까매지자 금세 젊어 보인다. 생기까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을 받고 퇴원하여,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 염색을 하시러 읍내 미장원에 가시겠단다. 나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선다. 엄마가 염색하러 간 곳은 터미널에 있는 미용실이다. 우리는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고 아버지 차를 타고 서둘렀건만 미용실에는 이미 서너 분의 어르신들이 대기하고 계셨다. 우리는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오늘이 마침 장날이었던 것이다. 장을 볼 겸, 머리도 할 겸,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가장 이른 시간차를 타고 이곳 터미널 미용실에 오신 것이다.


미용실에는 선풍기가 켜져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주말드라마가 나오고, 엄마를 비롯한 나이 든 어르신들은 자신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린다. 미용사 또한 어르신들을 상대로 파마기가 가신 하얀 머리카락을 쳐내고,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말아간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이면 장 보러 왔다가 잠시 들린 단골이신 듯한 중년의 여성들이 빗자루로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미용사는 익숙한 듯 머리 말기를 계속한다.


어르신들은 어제 내린 비로는 깨밭에 물도 안 들었다며, 지금 짓고 있는 농사 이야기며, 아들 이야기며, 남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엄마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기다린다. 화장실도 안 가신다. 나는 두 번이나 화장실로 들락날락하고, 어르신들을 바라보거나, 엄마를 바라보거나, 머리를 마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을에서도 뵙지 못한 한동네 어르신들도 여기서 만난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를 반기고, 나도 동네 어르신들을 반긴다. 드디어 엄마 차례가 왔다.


엄마는 오늘 머리도 말고, 염색도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미용사는 수술하여 면역력이 떨어지고, 염색약 가려움증이 있는 엄마에게 오늘 염색까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파마만 해드리겠단다. 한 동네 엄마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신 어르신은 오늘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하신단다. 엄마는 자신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며 다시 한번 염색도 해달라고 해본다. 하지만 미용사는 다음 주에 다시 오시라고 말한다. 엄마는 목소리에도 얼굴빛에도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내면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오고 갔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가 사 온 염색약이 집에 남아 있으니 며칠 후 내가 해드리겠다고 나는 말해본다. 나는 태어나 딱 한번 염색을 해봤다.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에 미용실에 들러 염색한 것이 다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한테 염색약을 발라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수술 전 언니가 엄마한테 해드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만 보았을 뿐이다.


결론은 이렇게 염색하는 일이 힘든 것인지 처음 알았다. 나는 엄마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의자를 가져오고, 염색약을 떨어뜨릴 것을 대비하여 신문지를 깔고, 엄마는 미리 깨끗하게 빨아둔 비닐을 둘렀다. 나는 내심 엄마 얼굴에 묻히지 않고, 머리에도 묻히지 않고, 머리카락에만 발라 완벽하게 해내리라 기대한다. 웬걸, 초짜에게 그런 일이 있을 턱이 있나. 아니나 다를까, 엄마 얼굴에 검은 염색약을 묻히지 않으려고 하다가 염색약을 떨어뜨리고, 염색약은 미리 깔아 둔 신문지를 빗겨 나 방바닥으로 낙하하고, 엄마 귓가와 목덜미에도 시커멓게 묻히고 말았다. 나는 방바닥을 닦아내랴, 염색하랴, 이것저것 신경 쓰랴, 처음에 조심조심했던 손길은 어느새 과감해지면서 드디어 염색을 마쳤을 때는 거의 무슨 대단한 중노동을 한 뒤처럼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가 뒷정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 동안, 엄마는 나의 이런 긴장감이 전달되어 불안하셨는지 10분이 좀 지난 것 같은데 머리를 감으셨다. 물이 다 들기도 전에 너무 빨리 머리를 감으신 것이다. 엄마 머리카락 색이 갈색이다. 나는 “엄마, 염색약 아직 한 통 남았으니까, 담에 큰언니한테 새까맣게 해달라고 해~”하고 수습한다. 내가 보기에 나름 괜찮았지만, 엄마의 속마음을 내 어찌 알랴. 수술 직전에도 염색을 하고 가시는 분이다. 엄마는 나와 다른 사람인 것이다. 나 또한 염색을 하며, 얼마나 내가 엄마와 다른 사람인가를 알아간다. 엄마 또한 딸에게 염색을 맡기며 자신이 낳은 딸이 자신과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를 아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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