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야채, 여주를 아시나요?
난 ‘여주’ 요리를 두세 가지 할 줄 안다.
여주는 일본에서 처음 알았다. 형태가 비슷한 수세미는 본 적이 있어도 여주는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주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고, 물론 만들 줄도 몰랐다.
일본어로는 ‘고야’라고 하는 여주 요리에 대해서는 오키나와에서 온 학교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여름 보양식으로도 불리는 고야 요리는 일본에서도 특히 남쪽 오키나와에서 많이 먹는 요리이다.
오키나와 친구한테서 여주 요리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여름철만 되면 마트나 시장에 들러 여주를 찾게 된다. 그래서 여주를 마주칠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늦여름 우리 동네에 새로운 마트가 생겼다. 살 것이 있어 구경도 할 겸 들렸는데, 여성 직원 한 분과 손님이 여주가 가득 든 상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여주가 튼실하기도 하다. 올해 본 여주 중에서 가장 실했다.
손님인 듯한 분이 여주 한 봉지를 들고 있고, 직원분이 “몸에 좋다며 여주를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하신다. 손님은 “해먹을 줄을 몰라서.”라며 망설이고 계신다.
나는 일본에서는 이 요리가 아주 일반적이라고 말하며 돼지고기, 두부랑 볶다가 나중에 달걀을 풀어서 해 먹어도 좋고, 간단하게 참치하고 마요네즈를 버무려 샐러드처럼 해 먹는 요리가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자 두 분이 관심을 가져준다. 나는 빠르게 더 세세하게 알려드린다. 좀 쓴 맛이 나니까 속에 든 것을 잘 파내야 한다고까지 말해준다.
그러면서 친구 거와 내 거 두 봉지를 산다. 먼저 계셨던 손님도 한 봉지를 산다.
한 봉지 안에 큼지막한 여주가 세 개나 들어있다. 이 세 개의 여주는 가난한 내게 몇 끼나 되는 귀한 반찬이 되어주리라.
나는 친구에게 가져다줄 여주 한 봉지는 바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여주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주를 잘 씻어 가운데를 가르고, 수저로 안을 파낸다. 그리고 적당하게 채 썰어 소금에 5분 정도 절여놓는다. 여주를 다시 물로 헹구고 물기를 짠 다음 참치와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리면 끝이다.
이 요리를 할 때마다 오키나와 친구가 떠오른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오키나와마저 가깝게 느낄 때가 있다.
오키나와 친구가 내게 여주 요리를 전수해준 것처럼 나 또한 참기름 주먹밥을 친구들에게 알려줬었다. 친구들은 내가 만들어간 참기름이 들어간 주먹밥을 좋아했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만큼이나 참기름을 애용하지는 않는다. 친구들은 내가 만든 주먹밥 맛을 보고는 그 후 주먹밥을 만들 때 참기름을 넣어 만들어 먹는다고 했었다. 지금도 그들 중 누군가는 그렇게 참기름을 넣은 주먹밥을 만들어 먹고 있을까?
요리법을 몰라 먹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여주는 여름철만 되면 내 귀한 식재료가 되고, 내가 친구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되어주었다.
저녁에 동네 지인이랑 산책을 하며 어느 집 마당을 보는데 초록빛 줄기가 앞마당을 타고 대롱대롱 열매가 열려있다. 지인이 “뭘까요?”궁금해한다. 자세히 보니, 여주다.
나는 “여주예요.”하고 말한다.
지인은 “여주요?”하고 묻는다. “네 여주요.”나는 대답한다.
우리들 가까이에 내가 좋아하는 여주가 누군가의 마당에 실하게 열려있는 모습을 보며, 보기만 했는데도 묘한 충족감이 든다.
나는 이제 오키나와 친구가 알려준 요리법 말고도 내 나름대로 응용하여 여주를 다룰 줄을 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어떤 식재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다루다’에 대해 인터넷 사전 맨 첫 번째에 나와있는 의미를 보니 “일거리를 처리하다”가 떠있다. 여주 하나로 나는 뭔가 전문가가 된 느낌이다.
문득 나는 내가 잘 다루는 전문 분야에서 그 어떤 이에게 ‘여주’가 되어주는 그 무엇인가를 주고 싶다. 소박한 야채 하나가 여름 보양식이 되듯,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보양이 되는 그 무엇인가를 건네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