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이 부른다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들판이 부른다

논문을 쓰거나 글을 쓰다가 또는 번역을 하다가 온몸이 쑤시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 들판으로 향한다.


가끔은 작업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창으로 비춘 오렌지빛 저녁 햇살을 발견하면 뜀박질을 하듯 내달려 들판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햇살을 쪼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몸을 풀거나 남은 햇살을 찾아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굳었던 몸에 피가 돌고, 몸이 풀린다.


햇살이 내리쪼이는 동네 들판은 그야말로 내가 즐겨 찾는 단골 병원인 셈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들판에서 들판으로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는데, 매일 가는 학교길이 언제나 새로웠다.

들판의 곡식과 채소가 사계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날그날마다 구름과 하늘이 다르고, 풀들이 다르고, 공기도 달랐다. 매 번 같은 곳을 오고 갔는데도 매 번 색다른 두근거림이 있었다.


논이나 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 석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어릴 때 원 체험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가 몸이 힘들고 지칠 때 날 들판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그런지 들판에 나가 햇살만 쪼여도, 바람만 쏘여도, 공기만 들이마셔도 기분이 전환되고 절로 삶의 활기가 생긴다. 어렸을 때의 생생한 기분이, 감동이 날 그렇게 이끄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아주아주 작은 열매 씨앗 부스러기를 하나 물고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잠시 몸을 수그리고 개미를 관찰한다. 개미는 자신이 발견한 먹거리를 자신의 집까지 가져가기 위해 자신이 가는 길 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도 장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찾은 이 먹거리를 옮기는 것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개미의 행렬을 관찰하고, 땅강아지나 쇠똥구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무당벌레를 관찰했었지.

들판은 이처럼 여전히 날 살리는 단골 병원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습의 장소이다.


가끔 들판에서 아이들 무리를 만났을 때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유치원이나 어느 학원의 아이들일까. 젊으신 두 선생님과 열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질서 정연하게 들길을 향해 가고 있다. 선생님 손에는 비닐봉지와 집게가 들려있고,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들판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도록 지도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지나간 들판은 클로버가 푸르게 펼쳐지며 아름다웠다.

“선생님, 쓰레기는 집에서 버려요?” “그렇지. 쓰레기는 집에서 버려야지.” 아이가 말하고 선생님이 대답한다. 아이들도 멋지고 선생님들도 멋지다. 나는 아이들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본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란 말이 떠오른다.


단골 들판에서 종종 마주치는 어린 소년이 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할머니와 나올 때도 있고, 할아버지하고 나올 때도 있다. 어린 소년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가 절로 내 마음을 맑게 정화시킨다. 소년은 꽃하고도 말하고, 나비하고도 말하고, 물론 강아지하고도 말하고, 들판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하나도 모두 장난감이 된다.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정말 생판 타인인 나마저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뭔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나는 소년에게 “너 너무 귀엽다.”하고 말한다. 소년은 “근데 나 통통해요.”하고 대답한다. “아냐, 넌 그냥 건강해. 괜찮아.”하고 말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와 어른, 풀과 꽃, 벌레와 곤충, 강아지와 고양이, 바람과 햇살이 들판에 함께 하는 그 순간 나는 모든 고단함을 잊고, 모든 근심을 잊고, 모든 스트레스를 잊는다. 어릴 때 느꼈던 감성이 지금 이 들판에도 함께 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감동한다.

keyword
이전 13화야채, 여주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