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구워 먹고, 역 도시락을 사 먹고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은행을 구워 먹고, 역 도시락을 사 먹고

아동문학과 동기들 중에서 특히 친하게 지낸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아동문학과는 일본에서도 이색적인 학과여서 각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 아키타에서 온 친구, 카가와현 다카마쓰에서 온 친구, 오키나와에서 온 친구 셋 하고 뭉쳐 지냈다.


함께 어울려 미노 폭포를 구경 가고, 다카라즈카나 나라에 가기도 하고, 교토 철학의 길을 같이 걷기도 하면서 마지막엔 꼭 기념품 가게에 들리곤 했다. 내 친구들은 귀엽고 특이한 물품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가난하여 쉬이 살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키타에서 온 친구가 날 보며 말한다. 언니는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다. 장학금을 받아 생활하는 나는 학비를 내고,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생활하는데 써야 해서 귀엽고 예쁘다고 날 위해 어떤 물품을 살 수는 없었다.


가을이 무르익기 전, 학교 교정에 은행이 수북하게 떨어졌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은행을 주워 내가 사는 좁은 하숙방으로 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행을 구워봤다. 집에 있는 프라이팬으로 구웠다. 어떻게 익는지, 구워지고는 있는지 몰랐지만 튀어 오르는 것을 조심하며 열심히 구웠다.


이윽고 우리는 그 좁은 방에 모여 앉아 구운 은행을 까먹었다. 꿀맛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타쓰에 은행을 구운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언니’를 일본어 발음으로 ‘온니’라고 부르며 내게 살갑게 다가온 친구들은 일본의 재미난 만화책을 소개해주고,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말을 알려주고, 학교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내 일본어를 교정해주고, 문장을 봐주었다.


오키나와에서 온 친구는 어찌나 우리들의 생일을 잘 챙기고, 노래를 잘하는지 모른다. 다카마쓰 친구는 자신의 고향으로 나를 초대해주고, 이후 쫄깃쫄깃한 면발이 특징인 사누키 우동으로도 유명한 다카마쓰는 오사카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여 밤이 새도록 같이 이야기하며 놀기도 했다.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나는 어느새 잠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키타에서 온 친구가 “언니는 너무 빨리 잠든다.”고 아쉬워했었다. 나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지만 대화는 끝이 없다. 어쩌면 그렇게 조용조용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루는 넷이서 기차여행을 하기로 했다. 왕복으로 하면 표값이 너무 비싸서 편도만 구입하여, 역에서 도시락을 사서 기차 안에서 먹고 오는 여행이다. 이 또한 누가 먼저 말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교토를 지나 비와호 근처인 오미 이마즈 역을 지나 쓰루가 역에서 도시락을 사, 바로 돌아오는 여행을 떠났다.


이날 따라 가을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고, 절친 넷이 함께하는 열차 여행은 우리를 웃음꽃 피우게 했다. 드디어 우리가 역 도시락을 사기로 계획한 쓰루가 역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꽃게 초밥 도시락을 사고, 나는 구운 고등어 초밥 도시락 구입에 성공하여, 교토로 돌아오는 열차로 갈아탔다. 우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넘쳤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초밥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어찌나 좋은지, 어찌나 즐거운지, 역 도시락만 사 가지고 돌아오는 미니 열차 여행이었지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편도 기차표만 끊어서 갔다 오는 것이라 한켠에 조마조마한 맘도 있었지만 역 도시락까지 먹은 우리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 곧 교토다.


교토가 다 와갈 즈음에 역무원 한 분이 우리 좌석을 향해 다가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지불 안 한 편도 비용을 한 명씩 한 명씩 지불했다.


우리는 칼같이 제값을 챙겨 받은 역무원이 사라진 다음에도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우리는 다시 본연의 우리들로 돌아와 서로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더랬다.


내가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연구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연락하며 지냈다. 그중에 다카마쓰 친구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주었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오키나와에서 온 친구와는 조우를 못했지만 아키타 친구는 왔다. 예전 우리들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동지였다. 그걸로 족했다. 또 다른 각자의 삶을 각자의 터전에서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 각자의 삶 속에서 나의 학창 시절의 절친들은 또 다른 절친들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연락이 끊어져 소식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믿음만큼은 분명한 확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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