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손주와 있는 분들과 자주 마주친다
어린이문학 연구가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나는 어린이에게 눈이 많이 간다. 그래서인지 산책로나 전철역에서 손주와 함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주 마주친다. 어제는 전철역을 갈아타는 도중에 한 달 전에도 뵌 적이 있는 손자와 할머니를 다시 보았다. 전철역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전철에서 마주친 손주분은 지적 장애가 있는 중학생 정도의 소년으로 키가 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년이 앞서 내려가고 그 중간에 소년의 할머니로 보이는 연배의 분이 장 볼 때 사용하는 바퀴 달린 가방을 들고 뒤따르신다.
할머니가 소년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가방을 가리킨다. 소년은 아랑곳 않는다. 지나가며 돌아보니 할머니가 손주에게 네가 가방을 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손주는 여전히 들은 채 만 채다. 다시 할머니가 손주에게 가방을 내밀자, 키 큰 손주가 무심코 가방을 건네받아 끈다. 할머니는 차분한 관록으로 끝내 소년이 스스로 가방을 끌도록 유도한 것이다.
며칠 전에는 산책로 농구장에서 할아버지와 야구하는 소년을 보았다.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나도 이 산책로의 단골이기도 하지만 이분들도 단골이어서 두 분이 야구를 하거나, 친구들이랑 함께 야구하고 있는 모습은 여러 번 목격하였다. 소년은 본인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 야구공이 멀리 다른 곳으로 튕겨나갈 때 대부분 할아버지가 주우러 간다. 이날도 몇 번이고 튕겨나간 곳을 주우러 간 사람은 할아버지다. 그러다 이번에는 소년 뒤로 공이 튕겨져 나가고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주워오도록 몸짓한다. 소년은 가기 싫다는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마지못해 공을 주우러 간다. 할아버지는 멀찍이서 인내하며 소년을 기다린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의 관계는 특별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손주가 먹고 싶다고만 하면 부침개 다섯 장 열 장도 먹도록 내버려 둘 기세다. 전철에서 만난 할머니도 야구 할아버지도 손주들의 뜻을 가장 많이 받아주시고, 손주들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인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기 뜻을 받아주는 분이신지 아닌지 손주들도 기가 막히게 잘 안다. 비빌 언덕을 아는 것이다. 이런 손주들을 오냐오냐 받아주면서도 어디쯤에서 손주들이 그들 스스로가 본인의 책임을 다하도록 권유할 것인가.
그냥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고 지켜만 주기에는 전동차 소년도 야구 소년도 자신만의 강한 고집이 있어 보인다. 특히나 이런 소년들을 상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소년들의 마음도 캐어하면서 소년들의 자아 형성과 성장에 신경을 써 캐어해야 할 것이리라. 인간적으로 아낌없이 사랑을 주면서, 계속해서 온화함과 사랑으로 대하고자 하면 할수록 할머니, 할아버지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야말로,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고수들이다. 후반기 인생, 그들의 축적된 관록과 노하우를 가까이에 있는 손주들이 최적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활개를 치도록 자유를 허용하면서도, 타자에 대한 배려심을 배양하는 보다 인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그간의 축적된 역량을 발현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대인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전동차 소년과 야구 소년은 자신들의 뜻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자 한다. 소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맘껏 받아주던 대인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열에 한 번은 소년들의 자발성을 유도한다. 드디어 소년들이 움직인다. 실은 소년들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움직여야 할 때였음을. 그리고 게임 중에 반칙을 하거나 규정을 어기는 경우가 생길 때도 대인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치 심판처럼 때로 단호하게 소년들에게 대처하리라. 이 또한 소년들은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도가 지나쳤음을.
그래도 그렇지 인생의 후반기에 이 무슨 시련이란 말인가?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대인배인 대다수의 손주를 둔 어르신들은 적절한 거리감 속에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인생의 대선배처럼 그렇게 능수능란하게 해낼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3박 4일이고, 일주일이고 그들과 함께 하며 그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은 심정이다.
좁다란 세계관이 아닌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와 룰이 함께하는 넓은 세계관 속에서 손주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상생하는 관계망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