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한 꼭지 두 꼭지, 밭 한 마지기 두 마지기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강의 한 꼭지 두 꼭지, 밭 한 마지기 두 마지기

같이 공부하는 연구자 동료들이 내게 강의 한 꼭지 두 꼭지를 내어준다.

누가 날 불러주는 곳도, 내가 어디 갈 곳이 없고, 당장 먹고살 길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감사히 그들이 불러주고 내어준 강의에 참여한다.


춘천으로, 충주로, 나는 연구자 친구도 보고 강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온다. 내가 내 돈 내고 사 먹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 친구들이 커피도 사주고 케이크도 사주고 맛난 별미도 사준다. 나는 몸만 갈 뿐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옷만 얻어 입는 것만이 아닌, 강의 한 꼭지 두 꼭지도 얻는다.


어디 강의 한 꼭지 두 꼭지뿐이랴.

연구자 친구들은 가끔 내게 밭 한 마지기 두 마지기를 내어 줄 때도 있다. 밭 한 마지기는 연구 주제를 가리킨다. 그들은 내게 멋지고 매력적인 연구 주제를 제공하거나 글거리를 제공해 주기까지 한다.

가난한 나는 부끄러움이 없다.

그들이 내어준 한 꼭지 두 꼭지의 강의료는 내 한 달 살이 두 달 살이가 된다.

그들이 제시해 준 한 마지기 두 마지기는 내 한 해 살이가 되기도 한다.


연구자 친구들은 내게 때때로 자신들이 연구할 1차 자료인 일본어 자료 번역을 부탁하여 충분한 번역료를 챙겨준다.


내가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런데 나는 병든 엄마 일로 정신없다며 논문 심사를 거절하고, 만나자고 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가난한데 염치없기까지 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내가 봐도 내가 한심하고, 이런 내 모습에 살짝 눈물까지 날라고 한다.


이 친구들과 올해 들어 한 달에 두 번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줌으로 일본어 강좌를 열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근대 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라, 근대 자료를 많이 본다. 근대 자료는 일본어 자료도 많다. 나는 물론 이들이 원하는 연구 자료를 번역해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이들이 일본어를 습득하여 자료를 술술 읽고 해독했으면 한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연구자 친구들이 가능하면 위로를 받고 즐겁게 일본어를 습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가능한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가능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최선을 다해 조력한다.

지금 당장 내가 이들에게 갚는 가장 구체적인 행동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한 방정환 연구 모임인 ‘작은물결’ 동료다. 방정환은 근대 시기 동심을 온몸으로 실행한 사람이다. 나는 이 모임을 함께 하며 우리 모임은 동심이 살아있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픈 친구를 동정할 줄 알고, 사랑을 나눌 줄 알며, 괴로움에 처한 친구에게 다가갈 줄 안다. 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민에 빠졌을 때 들어줄 줄 안다. 이것이 살아있는 동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방정환 선생님이 지금 우릴 본다면 그래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것 같다. 나는 가난하고 염치없을 뿐만 아니라 살짝 ‘자뻑’도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러든 말든 나는 뭐 좋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 창가에 앉아 비바람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고, 소독차가 흰 연기를 뿜고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역시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물 한 모금을 들이켠다.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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