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기증하고 이사를 하다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책을 기증하고 이사를 하다

아동문학과가 있는 일본 오사카의 한 대학에서 9년 동안 어린이문학을 공부했다. 덕분에 어린이문학에 관련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대학교 산하 유치원에도 꾸준히 참가하여 어린아이들과 그림책도 읽고, 동료들과 그림책 관련 연구도 했다.


학위를 모두 마칠 때가 되자, 내가 모은 연구에 관련된 자료는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들과 선배, 친구들이 준 귀한 자료와 도서로 내 일본 하숙집은 빈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충주에 있는 한 대학 연구소를 알아보고 연구실을 확보하여 이 엄청나고 귀한 자료들을 배편으로 보냈다. 한 달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까지 온 이 자료와 도서들은 그 후 내 연구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많은 논문을 썼고, 연구 실적을 내고, 연구서를 펴낼 수가 있었다.


그 후 소속이 바뀔 때마다 이삿짐센터분들에게 책이 돌보다 싫다란 소리를 들으며 춘천으로, 수유리로, 옥수로 이 많은 자료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옥수에 살던 무렵, 나는 한 대학 연구소에서 근무한 2년 8개월을 끝으로 연구자 인생 2막이 끝났음을 알았다.

일본에서 9년, 한국으로 돌아와 6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리고 책을 받아줄 곳을 알아보고 기증을 한 다음에 난 내 한 몸 의탁할 작은 집을 찾아 지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책을 기증하기 전에 나는 기증할 책과 내가 지닐 책을 나누었다. 기증할 책에는 오래된 귀한 잡지, 아동문학 관련 대표 연속간행물, 많은 창작 단행본과 연구서가 들어있었다. 기증할 책들의 먼지를 털고 닦았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책만이 아니라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에 적을 두고 있던 두어 군데의 학회도 정리했다.


이때를 전후로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고, 20대 시절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서 몰두했던 창작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창작은 일본에 있던 9년 내내 복수 전공으로 창작 수업을 들었으며, 선후배가 모여 만든 합평반에도 참여했다. 일본어로 꾸준히 창작도 하고, 논문도 써온 것이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 공부해온 두 개의 길 중, 연구일에 몰두하느라 그동안 소원했던 창작의 길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그 창작 습작의 길로 들어서 7년이 되어 쓰는 에세이다. 나는 내가 에세이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나는 논문으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판타지 창작, 심리 관련 비평글, 그림책 창작글 원고 등도 꾸준히 썼지만 곧바로 출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생계를 위해 심리 관련 글을 바탕으로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일본어와 그림책을 접목시킨 강의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인터넷 번역 사이트에 등록해 놓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보고, 면접을 보고 하는 등 이런저런 시도도 해보았다.


나는 뭐든 거리낄 게 없었다. 그 무엇이든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일본에서의 유학생활로 인생 1막이 열렸다면, 2막은 한국에서의 연구자 생활, 그리고 지금 3막을 열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이 준비 단계는 결국 7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실은 지금도 과정 속에 있다.


그동안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작년에 작은 연구비를 따내,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생활을 하고 있다.


가난한 나는 그런데도 오랫동안 함께 공부해온 심리 공부 모임 멤버들과 제주도를 한번 다녀왔고, 강의 활동을 통해 여러 귀한 지인들을 알게 되었고, 여러 공부 모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내 가난하고 누추한 집에 놀러 온 친구들도 있고, 개의치 않다며 숙소 삼아 잠을 자고 간 친구도 있다.


나는 내 연구실이기도 하고, 창작실이기도 하고, 내 숙소이기도 한 이곳에서 내 인생의 3막을 열 기세에 있다. 이 집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에서 가져온 그 많은 자료를 기증하고 나자, 나는 나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틈이 생긴 내 사유의 공간에 새로운 생각이 싹틔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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