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그래, 고생하고 재밌게 놀자~!
며칠 전 자주 들리는 산책로에 들어서 몇 발자국을 내딛는데, “고생하고, 재밌게 놀자.”, “그래, 고생하고 재밌게 놀자~!”라는 목소리가 내 맘속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년 둘이었다.
둘은 바짝 붙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들이 말한 ‘고생하고 재밌게 놀자.’ 뭔가 큰 울림을 주었다. 아직 어린 저 나이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놀기에도 바쁠 저 나이에, 두 소년은 인생을 알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 참 인생의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소년들은 벌써 재밌게 놀기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고생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눈앞이 확 뜨이며, 그래 나도 지금 이 고생을 달게 받아들이고, 나도 소년들처럼 재밌게 놀자. 그런 생각이 들자, 산책 내내 마음이 흥겨웠다.
그리고 오늘 다시 산책로에서 두 소년을 보았다. 둘은 하나의 농구공으로 재미나게 농구를 했고, 산책로 주변 풀밭을 탐색하며 뛰어다녔고, 무슨 이야기인가를 주고받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둘이서 정말로 재밌게 놀고 있었다. 둘의 모습은 마치 텔레비전 방송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유느님과 조셉님 같았다.
두 소년은 세상을 모두 가진 듯, 뜨거운 여름날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다, 모름지기 삶이란 저 두 소년처럼 살아야 할지어다.
소년들은 이 재미난 것을 알고, 이 재미난 것을 함께 할 동무가 있기에, 그까짓 ‘고생’쯤 마다하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소년들은 고생을 해내고, 지금 이렇게 재미나게 놀고 있는가 보다.
나는 두 소년의 모습이 세상 아름다워 보였다. 산책로에서 놀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나 예뻤다. 둘이 떨어졌다, 붙었다가, 서로 마주 보았다가 눈을 돌렸다가 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감탄스러웠다. 두 소년은 농구공 하나로도, 단조로운 산책로도 풍요로운 세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지금이라는 시대를 서로 공유하고, 한 마음인 두 소년은 각자에게 다른 고생이 따라도, 함께 놀 수 있는 기쁨을 알고,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그 무엇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나는 두 소년의 마음을 안다. 두 소년의 기쁨을 안다. 두 소년의 고생까지도 안다, 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두 소년에 심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도 두 소년처럼 재미난 것을 하기 위해 일심동체가 된 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글을 통해 생성되는 일의 세계에서, 저 소년들처럼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합일의 세계, 그런 놀이의 세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이지 이런 소년들 같은 심정으로 그 무엇을 행한다면 그 자체로 만족하게 될 것 같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머리로 재고, 상대에 대한 생각까지 파악하려 하고, 심지어는 내 행동까지 계산하는 나 같은 어른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재미를 끌어내는 두 소년의 경지를 어찌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저 소년들에 주목하는 것은 내가 다시 그러한 무의 세계에서 유를 창조하고자 하는 마음을 꿈꾸고 있다는 것, 그런 재미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 그러하기 위해서는 두 소년과 같은 상태, 함께 하면서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이 둘의 즐거움이 다른 타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지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