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엄마에게 동화책을 선물하다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최근에 <동화로 떠나는 내면 강좌>라는 줌 강좌를 들으러 와주신 분 중에 영미문학을 전공하신 선생님께서 엄마와 나누고 싶은 말이 이 말이라고 하셔 나도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이 한창 자랄 때.”라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가장 바쁘고 힘들 때였을 그 시기가 엄마는 제일 행복했다고 하신다.
내가 알기로 엄마는 오로지 자식들과 농사일이 전부인 여성이다. 행동이 과한 것도 말수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에게 차분하고 조용한 여성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집에 같이 있어도 엄마 쪽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무슨 말이든 내 쪽에서 말을 걸어야 한다. 그래 봤자 길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자식들이 한창 클 때의 엄마는 글을 능숙하게 읽지는 못하셨다. 그러던 엄마가 노인학교에 다니며 이런저런 강의도 들으시며 요가를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글자를 익히셨다.
엄마가 즐겨보는 <전원일기>를 함께 시청하며, 나는 다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요즘 읽는 책 있어?” 엄마는 없다고 답하신다. 나는 서울에서 올 때 챙겨 온 동화책 한 권을 엄마에게 내민다. <버스를 기다리며>라는 책이다. 정식 출간된 책이 아니다. 이십여 년 전에 종이를 실로 꿰매 내 손으로 만든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이다. 나는 이 동화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는 내가 중학교 1학년 입학식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있었던 일을 적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입학실 날 엄마와 나는 시간차를 놓치고 버스를 기다리다 추위를 피해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날의 기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나는 이때의 기억을 동화로 써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 남겨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문구점에서는 호빵을 팔고 있었다. 나는 이때 먹은 호빵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난한 엄마는 자신은 사 먹지 않고 나한테만 호빵을 사준다. 호빵을 받아 든 나는 너무 뜨거워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한다. 놀란 가슴에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엄마도 먹어.”
호빵을 한 입 베어 물어 오물오물 씹으며 내가 말한다.
“엄만 배 안 고파.”
나는 두 손으로 호호 불며 호빵을 먹는다. 팥 앙금이 이 세상 맛이 아닐 만큼 맛있다. 팥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다. 나는 동그랗고 하얀 호빵 종이를 벗겨낸다. 종이에는 호빵이 가득 들러붙어 있다. 나는 종이에 들러붙어 있는 호빵을 떼어먹을까 망설이다가, 엄마 가까이에 있는 휴지통 쪽으로 손을 가져간다.
“아깝게 왜 버려! 이렇게 많이 붙어있는데.”
호빵 종이는 어느새 휴지통이 아닌 엄마 손에 들려있다.
다시 호빵을 먹다가 엄마를 본다. 엄마는 세상 꼼꼼하게 호빵 종이에 붙어있는 호빵을 떼어먹고 계신다. 나는 이제 호빵을 다 먹고 없는데 엄마는 여전히 호빵을 떼어먹고 계신다. 나는 그제야 ‘엄마도 배가 고팠구나.’하며 엄마와 함께 호빵을 나누어 먹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렇게 호빵 살을 일일이 다 발라먹은 엄마는 팥죽 새알을 만들 듯이 두 손으로 종이를 둘둘 말아 휴지통에 버린다.
이토록 가난했던 이 시기가 엄마는 행복했다고 하신다.
엄마는 “책, 안 읽어야.”하신다. 나는 “엄마, 이거 내가 만든 동화책이야. 엄마하고 내가 나와.”라고 말하며 다시 엄마에게 내민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받아 들더니, 한 번도 펴보지도 않고 곧바로 엄마가 가장 많이 계시는 소파 위쪽에 올려놓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언제나처럼 집안 청소를 한다. 화장실 청소를 한참을 하고 나오자, “책, 읽었다.”하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다.
그 사이에 엄마가 읽으셨구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가 다시 집안일을 시작한다.
허리 수술을 하고 별 낙이 없어 오로지 <전원일기> 돌려보기에 빠져있는 분이, 책은 안 읽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분이 “책 읽었다”라고 말해준 것이다. 무슨 백 마디 말이 필요하랴. 이 한마디 말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에 쓴 동화책이 비로소 제 주인을 만난 것 같아 나는 세상 흡족한 마음이 든다. 입학식 날 버스를 기다리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팥앙금이 든 호빵을 본인은 먹지 않고 나에게만 사준 그 보답을 비로소 나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