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투자 설명회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그림책 투자 설명회

그림책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투자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단 두 분이다. 이 즈음, 나는 그림책 글쓰기에 빠져 있었다. 열 편 정도의 그림책 글을 완성하여 출판사에도 보내보고, 주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도 보여드리고, 그림책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는 글동무들에게도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림책은 뭐니 뭐니 해도 그림이 꽃이다. 그림을 못 그리고 글로만 그림책을 표현한 나의 글은 어쩌면 반쪽의 거기서 다시 반쪽의 모습을 한 어정쩡한 상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때는 일을 중단하고 한참이 지난 시점으로 그동안 모아둔 돈도 거의 떨어져 가고, 일거리는 없고,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있었다. 자금도 없고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무모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뜬구름 잡는 상황에 봉착해 있던 나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나를 지지해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나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 날 부모님에게 그림책 한 권을 보여드렸다.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즐겨 놀았던 놀이를 그리고 쓴 그림과 글을 모은 그림책이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조카가 부모님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부모님도 그림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들고 간 그림책에 많은 관심을 보이시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어린 시절 놀았던 놀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림책 한 권으로 부모님과 저녁 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두 분을 상대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림책 활동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본격적으로 ‘그림책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두 분은 내 기세에 눌려 진지하게 설명회를 들었다. 그림책에 대한 설명과 내가 지금 처한 상황, 그림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 등을 말하며,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입에 거품을 물고 역설했다. 이윽고 투자금 이야기로 들어서자 귀가 얇고 사업가 기질이 있는 아버지는 더 적극적이 되고, 어머니는 의심의 눈초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분에게 투자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본다. 아버지는 투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한 푼도 투자할 생각이 없는 얼굴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한 채 나를 힐끗 쳐다보신다. 아버지는 더 적극적이 되신다. 나는 두 투자자를 앞에 두고 다시 한번 이 사업이 얼마나 전도유망한지에 대해 설명회를 이어간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회유 대상으로 지목하고 알아듣기 쉽게 열심히 설명한다.


어머니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꽤 깐깐한 투자자이다. 이런 분이 내가 일하는 상사로 계신다면 내가 기획한 일이 무산되기 십상이다.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가 너무 적극적인 것도 나는 경계한다.


나는 엄마에게 50만 원 정도 엄마 돈으로 투자할 생각이 있냐고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엄마는 조금 고개를 갸웃한다. 이쯤 되자 나는 감정에 호소한다. 지금 딸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이렇게 열심인데, 가장 가까운 어머니 투자자께서는 이렇게까지 투자할 생각이 없으면 어떡하겠느냐, 이 그림책 사업, 힘들지만 해볼 가치가 있다. 지금 내가 추진하고 있는 그림책은 영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다 볼 수 있는 거라 독자층도 다양하고 넓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못 그리고, 자금이 없다 보니,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한번 믿고 투자해 보시겠어요?”

재차 묻는다. 감정에 호소를 하자, 어머니 표정이 좀 누그러진다. 아버지는 얼마든지 투자하겠다는 모습까지 보인다.


“깔끔하게 어머니 백, 아버지 백 어떠십니까?”

나는 재차 묻는다. 그러자 두 분이 오케이를 하신다. 다음날 아버지가 어머니 투자 비용 백만 원과 아버지 투자 비용 백만 원을 내 통장으로 넣으시겠다고 하신다.


단 두 사람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비 유치에 성공한 나는 천군 만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투자비를 따내기까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천만 원 오천만 원보다 더 값진 이백만 원을 획득한 것이다.


나는 이 두 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 했다. 이분들의 귀한 투자비를 배로 갚아주는 그날을 위해서라도 나는 달려야 했다. 그림책 출간을 위해 애써야 했다. 그림은 하나도 못 그리면서 그림책을 내고자 하는 나는 실제 작업을 진행하면서 상상도 못 한 여러 난관에 부딪혀 애를 써야만 했지만 괜찮았다.


그림책에 관한 작업이라면 뭐든 다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어쩌면 부모님의 이백만 원이라고 하는 투자비와 부모를 대상으로 그림책 투자회까지 열었던 나의 절박함이 나의 저 무의식의 기저에서 나를 고무하고, 지탱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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