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그러지 마라 했더니 그만두었다
해 질 녘 무렵 야생 너구리를 닮은 동물을 자주 본다. 처음에는 너구리를 닮은 개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너구리 같다.
어느 날 밤 산책로에서 산책을 하는데 이 너구리를 닮은 개인지, 개를 닮은 너구리인지 하는 동물이 아주 시끄럽게 짖고 난리가 아니다. 잘 보니, 두 마리가 한 마리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어찌나 요란한 소리를 치던지 같이 산책하던 분들이 질겁을 하고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괴롭힘을 당하는 너구리가 도망치면서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너무 불쌍하고 안돼 보였다.
좀 더 지켜보다가 괴롭히는 두 마리 너구리를 향해 “너희들 뭐 하는 거니. 그러지 마. 왜 둘이서 한 마리를 괴롭히니. 비겁하고 못된 행동이다. 그러지 마.”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마치 내가 하는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가 뚝 그치고, 공격을 당하던 너구리가 산책로를 가로질러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두 마리 너구리는 쫓아가지 않고 다른 쪽으로 슬금슬금 사라졌다.
너구리들을 야단칠 때는 언제고 나는 너구리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네, 갑자기 너구리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내 주변을 보아도, 사회를 보아도 그만 좀 하라고 하고, 그러지 마라 하는데도 어디 그만 두나. 사람은 좀처럼 나쁜 습관이나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억지를 써 결국 타자를 힘들게 하고 괴롭힌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하려고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한 행동을 한다.
차라리 너구리가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봐라, 쟤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얼마나 비겁하고, 타자를 괴롭혔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만두라니까 바로 그만두지 않는가. 너구리가 내 말 좀 들어주었다고 나는 이제 대놓고 너구리 편마저 든다.
그 이후 너구리들이 싸움을 하는 모습도, 세 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저녁 무렵 다시 이 너구리 중 한 마리를 목격했다. 내가 산책로 초입으로 들어서자 너구리가 내 앞을 가로질러 수풀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너구리를 먼저 보았는지 너구리가 나를 먼저 보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동시에 서로를 바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여튼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 너구리가 괴롭힘을 당하다 간신히 도망친 너구리였는지, 괴롭히던 너구리 중 한 마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구리는 곧바로 몸을 돌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지만 너구리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순간 마치 이 너구리가 나를 알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책하는 내내 나는 너구리의 동태를 살폈다. 어쩌면 너구리가 내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보다 동물들 쪽이 훨씬 민감하게 우리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가 있을 터이니 말이다.
나쁜 행동을 하는 무리를 보았을 때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못된 행동을 대면했을 때는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우선은 그 행동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 후로도 너구리들이 한 마리를 괴롭히는 장면은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너구리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두 마리가 한 마리를 괴롭히는 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