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난 주에 시크릿투톤으로 염색하면서 인생 최초로 탈색을 해봤다.
소싯적(흡) 계속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그때도 차마 탈색은 시도를 못했던 나.
'이 나이에'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나이에 탈색 2번에 보라색 염색을 입힌 엄청난 도전을 한 것이다.
탈색은 뭔가 거대한 인생에 서사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은 작은 단막극이었기 때문에 탈색이 들어올 틈이 없었지. 후후.
지난 주에 화이자 백신을 맞고 아프지도 않고 백신휴가 덕에 시간은 남아 돌아 덜컥 미용실을 예약해
핸드폰에 수십개 저장된 시크릿투톤 이미지를 실장님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탈색은 그렇게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탈색을 한 주변 친구들에게서 '딱 1주일 간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왔다.
그러니 꼭 탈색하고 1주일 동안은 열심히 약속을 잡고 사진을 찍어둬야 한단 말과 함께.
아니 이 머리 만드는데 얼마나 긴 시간을 썼고, 무엇보다 돈을 얼마를 썼는데!
1주일은 너무 하지!
그래서 대부분 색을 유지해주거나 적어도 노란끼(한국이에게 극악)를 눌러주는 컬러 샴푸를 많이들 쓴다고 했다.
보색 샴푸 안쓰고 그냥 보라색 머리로는 1주일만 보내고 노란끼 올라오게 하기
VS
보색 샴푸 쓰고 보라색 최대한 유지하고 색이 빠지더라도 예쁘게 빠지게 관리하기
당연히 누구나 후자의 선택지를 고를 일에 난 생각이 깊어졌다.
비건 식단은 시작 못했지만, 나는 먹는 것보다도 동물실험을 하는 뷰티 제품들을 먼저 끊었기 때문.
각자의 가치관과 속도가 있는 일인데 나는 생존과는 관련 없는 뷰티제품에까지 동물이 이용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동물실험 외에도 대체 방안들로 가능한 것들이 분명히 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쉽게 끊을 수 있었다. (물론 염색, 파마, 네일 등 아직 시도 못한 영역은 많다.)
그런데 컬러 샴푸에서는 정말 흔들렸다.
'쓴 돈이 얼만데 ㅠㅠ 인생 마지막 탈색인데 그냥 사자...'
'이미 탈색한다고 쓴 저 염색약도 사실 크루얼티 프리가 아닐텐데 이건 모순이야'
등 여러 생각이 스쳤다.
컬러 샴푸라니, 너무 당연하게도 동물실험을 무족권! 반드시! 했지 않겠나.
동물에 털에 샴푸질을 하고 눈에 샴푸가 들어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실험실 풍경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디 한 번 찾아라도 보자란 마음으로 구글에 '동물실험 안한 컬러 샴푸'를 검색하니
이게 무슨 일. 꽤 많은 브랜드가, 꽤 좋은 후기들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시도해보지 않고 내 가치관을 쉽게 접거나 혹은 취향을 접지 않아야겠다.
컬러 샴푸가 나한테 인생을 가르쳐 주네.
컬러 샴푸를 계기로 뷰티 제품의 크루얼티 프리만 구입하기는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