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치 Apr 28. 2019

간사한 마음

들어갈 때 나갈 때 마음 다른 거지 뭐.


 회사 다닐 때는 매일 공부만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시험'이라는 목표가 있으면,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법이니 그 편이 낫겠다고. 회사일은 달랐다. 결승선이 없는 원형 트랙을 끊임없이 도는 기분이었다. 10년 차 선배가 2년 차인 나와 똑같은 업무를 하는 걸 보면서 이 회사는 지옥이라고 믿던 날들이었다.  

 퇴사 D+6개월. 취준을 하긴 해야겠으니, 토익 책과 컴활 책을 주문했다. 막상 다시 책을 펴니 좀 끔찍하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걸 또 하나 싶어서. to부정사니 엑셀이니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너 분명 반년 전에는 시험 보고 싶다며? 간사하기 짝이 없다.


 봄꽃이 피니까 좀 외로운 것도 같아서, 소개팅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진짜 해준다는 사람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사람이 간절하다가도 옆에 두면 금세 귀찮아지는 매직. 필요할 때만 남자친구를 찾는 비겁하고 모자란 속마음.


 책을 만들었고, 팔았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많이 사준다. 구 회사 동료들이나 친한 친구들은 충분히 짐작 가능했으나 정말 예상치 못한 구매 집단도 있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 가령, 대학 방송국 한 기수 선배(지난 7년 간 단 한 번도 연락 안 함), 20대 초반에 만난 구남친(3권이나 샀던데. 읽고 연락이라도 하던가), 밴드 같이 했던 오빠(3년 만에 연락이 닿음) 등등. 고마우면서 어렵다. 책 잘 읽었어, 하는 카톡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토록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을 그들이 읽고 날 어찌 판단할까 무섭기도 하고. 책 사준 건 또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사람이 참 좋은데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을 보지 않을 수가, 연애를 하지 않을 수가, 책을 팔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간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내야지. 주변에 의지하고 또 이겨내며 살아야지.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티 내면서 버텨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