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도
이틀간 서울에 다녀왔다. 집을 나서기 전 점검 삼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한 켠의 계란 아홉 알. 마트에서 파는 것들 중 찾을 수 있던 가장 적은 양이 10구였고, 2주가 지나도 계란은 한 알밖에 줄지 않은 터였다. 혼자서는 열 알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 매가도 높은 2구짜리 계란을 누가 사냐며 투덜대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여담이지만, 편의점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요즘 유행한다는 초콜릿을 사러 집 근처 편의점에 갔다. 진열대에 없길래 점주에게 물었더니 그게 뭐냐고 되묻더라. 서울이라면 이미 초도 발주 물량을 소진하고 재발주에 들어갔을 시기다. 이런 유행 상품들은 '팔리는', 혹은 '팔려야 하는' 타이밍이 있고 주기를 잘 맞춰 발주해야 한다. 근데, 모르신다니, 그게 뭐냐니!
그러니까,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그토록 그립던 그 '서울'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역에 들어섬과 동시에 지극히 양가적인 감각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경쟁하듯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가게의 음악 소리, 눈 앞에 장애물은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양 마구잡이로 밀치는 노인들, 옴짝달싹 못하게 서있어야 하는 지하철 한 칸. 원주에서는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살던 가방 깊숙한 곳 진통제를 꺼내 쥐었다.
프릳츠에서 커피를 사 먹고 강남 교보에서 책을 사는 삶은, 그걸 누리는 기쁨은 더없이 대단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빠른 시간의 속도에 질식할 것 같았다. 계속 진통제를 입 안에 털어 넣어야 머리가 덜 아팠다. 원주는 삭막하지만 조용하고, 서울은 풍요롭지만 불안하다. 풍요와 불안의 크기가 비슷해서 나는 계속 헷갈렸다. 서울이 최고야, 근데 서울은 너무 힘들어...
원주의 작고 추운 방으로 돌아와 계란 두 알로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남은 일곱 알을 상하기 전에 다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이걸로 충분하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