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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네 Mar 22. 2023

미치도록 니가 밉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5

어릴 적 키웠던 강아지가 떠올랐다. 까만 미니핀. 단모종이라 털이 엄청 빠졌고 배변훈련이 잘 되지 않은데다가 짖음이 너무 심해 결국 시골 할머니댁으로 보내졌던 작은 강아지. 그때의 훈련 방식이라함은 두툼한 신문지를 둘둘 말아 잘못한 강아지를 펑펑 때리며 벌을 줬더랬다. 어른들이 그리 했던 것처럼 나도 마음 속 켕기는 양심은 잠시 숨겨두고 아무데나 쉬를 한 강아지를 때렸었다. 

어느 날, 까만 강아지는 또 배변판이 아닌 다른 곳에 쉬를 했다. 나는 강아지를 붙잡고 그 작은 몸을 신문지로 때리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깡깡 울어댔다. 그날따라 매질은 쉬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내 스스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몽둥이와 강아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20년도 더 지난 기억이지만 아직도 떠올리면 끔찍하고 소름이 돋는다. 폭행에서 오는 아드레날린 분출에 따른 흥분,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 약한 개체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자연의 섭리.... 그 어떤 핑계 뒤에도 숨지 못할 잔인했던 나. 그 날의 내 모습은 어린 나이에도 너무 당황스러웠고, 집에 혼자 있어서 아무도 그런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다시는 약한 것을 때리지 않겠다고 홀로 다짐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십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내 손이 아프도록 있는 힘을 다해 심바를 때렸다.


심바를 때려야 할 만큼(?)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보통의 하루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이유식을 먹이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다음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쌀을 불려놓고 라디오를 들으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이 시간이 그다지 평화롭지 않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첫번째 낮잠을 잘 시간. 아기띠에 안겨 잠든 아기를 방에 눕혀놓고 깨기전에 빠르게 이유식을 만들었다. 밥솥에 이유식 재료를 넣어 취사를 눌러놓고 잠시 앉아 있다보니 아이가 깼다. 기저귀를 갈고, 간식을 먹이고, 또 놀고.


이 일과의 중간중간, 아마 매 10분마다? 20분마다? 심바는 짖었다. 누군가의 발소리, 말소리, 다른 강아지가 짖는 소리, 아기를 보느라 내가 빠르게 움직일 때, 익숙하지 않은 큰 소리가 날 때. 그 때마다 나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 심바를 진정시키러 가야 했다.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내 끼니를 입에 급하게 집어넣는 그 짤짧은 시간 동안에도 심바는 몇 번을 짖었다. 그럼 나는 밥을 씹으며 몇 번을 쫓아 나가야했다. 심바는 한 번 짖으면 잘 멈추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서 조용히 시키는게 차라리 나았다. 아기를 보는 것보다 심바를 보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기의 점심시간. 아기가 혼자 먹게 둔 채 좀 떨어져서 아기를 보고 있는데 심바가 번개처럼 현관앞으로 가며 짖었다. 그 순간 팽팽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심바를 구석에 몰아넣고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심바는 이빨을 드러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릴 때 폭력을 학습한 인간의 말로인가. 이 모든 힘듦이 다 심바탓으로 느껴졌다. 밉다. 너무 밉다. 너만 없었어도 내 육아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다. 너만 얌전히 있어도 내가 이렇게 피곤하진 않을 것 같다. 니가 짖지 않아도 아기 울음소리에 내 귀는 충분히 피곤하다. 이렇게 널 쫓아다니지 않아도 아기를 쫓아다니고 안아주느라 나는 충분히 힘들다.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거니. 왜 이렇게 못 살게 구는거니. 너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 심바는 그렇게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은 한 번이 어렵지 그 뒤로는 어렵지 않다. 그 뒤로 내가 심바에게 손을 대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내가 요즘 많이 참았다, 오늘 좀 힘들다 싶은 날에 심바가 또 짖으면 그 핑계로 때렸다. 한 마디로 대중없이 때렸단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바닥을 본다는데, 나는 내 바닥을 파고 또 판 것 같은데도 아랫층이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스스로가 너무 질 낮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괴로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 더 엉망인 내 모습이 나올 것 같은 막막함, 가족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염려. 이런것들이 하루하루를 두렵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오늘 또 화가 나겠지, 또 때리겠지, 아기에게 화를 내겠지 이런 걱정때문에 몸이 더 무거웠다. 우울증이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우울증일까 생각하서도 우울증이라는 핑계 뒤에 숨는 것 같아 내가 비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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