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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네 Feb 17. 2023

이유식은 강아지에게 양보하세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4

아기가 처음으로 고기 이유식을 시작한 날이었다. 곱게 간 소고기를 쌀가루와 물에 섞어 보글보글 끓인, 그야말로 고기죽. 대근육발달이 느린 우리 아기는 아직 하이체어에 앉을 수가 없어서 보행기에 태워놓고 이유식을 먹였다. 미지근히 식은 고기죽을 들고 아기 곁으로 가서 턱받이를 채우는데 옆에서 들리는 할짝거리는 소리. 심바였다. 


아기에게 처음으로 고기를 먹이는 날이라 들뜨고 설레서였을까. 원래는 아기가 먹을 준비를 완벽히 한 다음 음식을 들고 오는데, 그날따라 그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이유식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기에게 턱받이를 채운 것인데, 그 찰나에 발소리를 죽인 심바가 다가와서 고기죽을 먹어버렸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짐승은 짐승이다. 평소 걸을 때는 바닥에 발톱이 부딪혀 탁탁 소리가 나는데, 먹이(?)를 노리고 오는 짐승은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온다. 결국 심바가 먼저 고기죽의 맛을 봤고, 아기는 다시 새 죽을 가져와 먹였다. 그날부터 아기를 먹일 때는 좀 더 경계하며 먹이게 되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이유식을 먹이나 했는데, 육아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아이주도이유식을 발견하고 말았다. 아이가 손으로 먹을 수 있게 핑거푸드로 만들어주면 아이는 스스로 집어 먹는 이유식이다. 이 방법을 통해 소근육발달은 물론이고 스스로 먹고 싶은 음식과 먹는 양을 선택하면서 자기 주도성이 길러지며 죽이유식에 비해 여러 가지 식감의 음식을 느끼며 감각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반면 죽이유식에 비해 요리를 다양하게 해야 하고, 아이가 당연히 입에 잘 넣지 못하고 흘리며 장난을 칠 수 있으므로 뒷정리가 매우 매우 번거롭다. 나는, 번거롭고 정성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편이다. 결국 아이주도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기의 아이주도이유식의 가장 큰 적은 심바였다. 아기가 흘린 음식을 식탐 많은 심바가 그냥 놔둘 리가 없지. 울타리를 한 세트 더 구입해서 아기가 먹는 동안 아이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본 친구들은 아이가 갇혀서 밥을 먹는다고 표현했다. 




아기가 밥을 먹는 동안 씨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될 수 있으면 내가 도와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떨어져서 아기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설픈 몸짓으로 음식이 겨우겨우 입에 들어가면 축구경기에서 골이 들어간 듯 기뻤고, 아슬아슬하게 입에 들어가지 못하고 떨어지면 내가 더 아쉬워했다. 입에 제대로 넣기 전까지는 끼니마다 샤워 비슷한 걸 해야 했지만 나도 재미있고 아기도 재미있게 먹었다. 점차 흘리는 것도 줄어들고 내 정성은 청소보다 요리에 더 치중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기가 먹는 내내 울타리 밖에서 침 흘리고 있는 심바가 좀 안쓰러울 뿐. 아기가 울타리 밖으로 흘려주길 간절히 바라며 타는 목마름으로 아기의 손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강아지. 널 어쩌면 좋니. 


식탐 많은 심바 덕분에 아기는 먹을 때는 정해진 자리에서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일치감치 배우게 되었다. 식사는 물론이고 과일, 과자, 치즈 등 간단한 간식도 정해진 자리에서 심바와 분리해서 먹였다. 분리했다는 말은 먹을 때마다 아기 주변에 울타리를 쳐야 한다는 뜻이다. 항상 울타리를 쳐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집안을 기어 다니다가 힘없는 울타리를 잡고 일어서버리면 안전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설치하고 분리하는 것을 반복했다. 아기를 돌보는데 추가된 하나의 사소한 일. 하지만 아기를 돌보는 일은 이런 필수적이고 사소한 일을 만 가지 정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귀찮고 번거롭다. 


이 귀찮은 일을 하지 않은 어느 날. 늘 자리에 잘 앉아서 먹던 아기가 자리를 벗어난 날. 언제나 그렇듯 식탐 많은 심바. 우연히 이 세 박자가 딱 맞아 아기의 첫 물림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기가 좀 더 크고 나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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