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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네 Apr 13. 2023

애개육아, 산책은 이렇게 합니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7

아기를 낳기 전엔 퇴근 후 심바와 산책하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다. 쉬는 날에는 산책하기 좋다는 공원에 원정 산책을 가기도 했다. 산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줄여주면 짖음이 좀 줄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심바를 키우기 시작할때 쯤 한 훈련사가 유명해지며 산책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우리 역시 좋은 계기로 믿을만한 훈련사를 만나 산책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결과로 빵을 살 때 빵집 밖에 묶어놓으면 가만히 앉아서 날 기다리기도 하고, 카페에 얌전히 앉아서 내가 커피를 한 잔 마실만큼 기다려주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아기를 낳기 전엔. 





처음에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심바를 데리고 나갔다. 아기가 아직 어려서 작고 가벼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은 늘 그렇듯 어려워서 나갈 때마다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중간에 아기가 칭얼대면 어렵게 나간 산책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분유도 잘 먹고, 기저귀도 새 걸로 갈고, 최대한 기분이 좋아보이는 타이밍을 맞춰서 함께 나갔다. 이렇게 산책할 때의 난관은 심바의 배변처리이다. 아기를 앞쪽에 안은 채로 똥을 줍기위해 허리를 숙이면 아기가 뒤로 떨어지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자던 아기가 깨거나 몹시 불편해한다. 그래서 똥을 나의 측면에 두고 최대한 상체는 바로 세운 채 하체만 구부려서 똥을 줍는다.  마치 한복을 입고 나비같이 얌전히 자리에 앉는 모양이랄까. 하지만 우아한 설명과는 달리 아기를 안은 채 한 손엔 심바를 잡고 한 손으로 똥을 주우며 일어서면 곡소리가 절로 나고 무릎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산책을 한 번 하고나면 진이 다 빠지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산책 후 신이 난 심바와 나에게 안겨 잘 자고 일어난 아기가 놀자고 달려든다. 하하. 이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산책하러 나가면 다행인 시절이었다. 



아기가 자라 무거워지니 아기띠로 안고 산책은 불가능해졌다. 이번엔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 때 우리가 살던 곳은 인도도 넓지 않고, 인도가 없기도 했으며,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동네였다. 한 손에는 심바 리드줄을 잡으니 꼼짝없이 유모차는 한 손으로 밀어야 했는데, 보통 이하인 내 체력에는 아주 고된 일이었다. 게다가 이 산책법의 가장 큰 문제는 유모차에 심바 발이 깔리는 사고가 생긴다는 것이다. 심바는 웬만해서는 아프다고 낑낑소리를 내지 않는다. 진짜 병원 가봐야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게 부딪혀야 꺙 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는 강아지다. 유모차에 발이 깔려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파하는 강아지를 유모차와 함께 산책시키기가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하필 유모차도 초대형.




이렇게 지내던 중 친구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본인이 어릴 때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자서, 어머니께서 그 사이에 시장을 보고 오기도 하셨다는 이야기. 마침 나의 아기도 한 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아기였다. 그 날 오후 아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 방에 카메라를 설치해 둔 채 심바'만' 데리고 나갔다. 산책하는 30분동안 아기가 깰까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앱을 통해 본 방안의 풍경은 평화로웠고 산책하고 돌아와 발을 씻기고 커피를 한 잔 마시는 동안에도 아기는 깨지 않았다. 오, 마이, 갓.

그 날 부터 산책은 심바만 데리고 하게 되었다. 아기가 낮잠자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다녀왔다. 처음에는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으나 몇 번의 성공경험이 쌓이니 산책하는 발걸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물론 아기가 깨는 날도 있었다. 휴대폰을 통해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둘이서 있는 힘껏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한 번 깨고 나면 너무 미안해서 또 며칠 산책을 못 나갔지만, 도저히 둘 다 데리고 산책할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심바만 데리고 나가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아기가 깨는 일은 100번 중 5번 정도로 횟수가 적었다. 셋이 다 함께 나가서 고생스러운 산책을 하느니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합리화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나중에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아동학대가 아니냐고 하더라.)

심바만 데리고 나가면 그제서야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혼자 두고 온 아기가 마음에 걸려서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가던 엄마마냥 서둘러서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몸은 편했으나 마음이 편치 못해 이 즈음에도 심바는 매일 산책하지 못했다. 



결국은 아기가 더 자라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어서야 심바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산책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만 2년. 이 2년간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심바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고작 2년인데 그 때는 그 2년이 금방 지나간다는 걸 몰라서, 그 괴로움이 영원할 것만 같아서 심바를 못살게 굴었다. 길고 지루했던 2년이 지나고보니 심바는 병원에서 노견으로 불리는 일곱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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