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요리하다 버섯에게 고마워 써내려간 글
집주인이 여행으로 집을 비우자, 만 삼십사 세의 기생순이는 부엌을 독차지해서 기쁘다. 집주인의 부엌에 빌붙어 살기 2년째. 마음 편히 요리 실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마트에서 서둘러 사온 팽이버섯, 송이버섯, 라이스페이퍼를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조리대에 내려놓는다. 며칠 전 릴스에서 관자 식감의 팽이버섯 요리를 본 까닭이다.
팽이버섯 관자 요리는 매우 간단하다. 적신 라이스페이퍼를 깔고, 팽이버섯을 꾹꾹 눌러 김밥 말듯 감싼 뒤, 전분 가루를 살짝 뿌려 프라이팬에 부치는 것이다. 하지만 삼십사 세의 부침, 튀김 요리는 삼십사 년째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불 조절도 기름 온도 조절도 엉망이다. 애꿎은 기름만 콸콸 붓고 있고, 꾹꾹 눌러 감싸지 못한 팽이버섯 몇 가닥이 흘러내리기까지. 무방비 상태로 기름에 노출된 팽이버섯 가닥은 금세 바삭하게 튀겨진다.
뜻밖에 노릇하게 튀겨진 팽이버섯 가닥을 나무젓가락으로 얼른 집어 올려 입에 넣는다. 동공이 커진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팽이버섯 튀김은 정말 신비로운 맛이 난다. 버섯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고 튀기는 기름에 따라, 튀기는 정도에 따라, 뿌리는 조미료에 따라서도 그 맛이 놀랍도록 다채롭다. 오래전 어느 비건 레스토랑에서 팽이버섯 튀김을 처음 맛본 순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버섯은 채소가 아닌 균류로 잘 알려져 있는데 버섯을 뜻하는 한자도 ‘균菌’이다. ‘버섯 균.’ 아무리 균이라고 한들 내겐 고기와 같다. 쌈채소가 생겼는데 버섯이 없으면 쌈채소를 안 먹는 주의다. 정말 잘 구운 새송이 버섯은 정말 고기 맛이 난다.
그 요리법이 놀랍도록 다양하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버섯의 가격이다. 채소와 과일은 계절 따라 기후 변화에 따라 금값이 되어 구경도 못하게 되지만, 버섯은 사시사철 민주적인 가격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채식을 하는 동안 버섯은 그 가격이 변함없었다. 오늘 먹은 새송이 버섯은 4대에 1,100원, 팽이버섯은 800원. 그 밖에도 버섯의 활약은 대단하다. 버섯으로 대체육도 만들고, 버섯 섬유로 만든 가죽으로 가방도 재킷도 만든다.
1945년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버섯이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을 손에 넣은 것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꿈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내 눈에는 흙과 가지만 앙상한 소나무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양동이와 막대기를 든 카오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깊이 찌르더니 두툼한 버섯갓을 꺼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 ㅡ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중에서
반쯤 망한 버섯 요리에 가니쉬로 얹어보는, 책장 속 벽돌책의 몇 구절. 버섯으로 설명하는 세계라니 그 멋스러움에 덥석 샀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혼란스러워 덮어버리고 말았던 두꺼운 책. 버섯에 대한 고마움으로 오늘은 다시 펼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