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산책이 필요해
22년 겨울은 유독 추웠다.
“안동이 주변 지역보다 추워요. 동파 조심해요.”
어리숙한 외지인에게 안동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걱정 어린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한낮에도 살갗을 애는 찬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밤이 지나 눈을 뜨면 소복하게 흰 눈이 쌓여있었다.
한 달 만에 한옥을 찾았다. 칭칭 감아둔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 세상은 온통 하얬다. 눈이 내렸다가 녹았다가 한파가 왔다가 다시 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결국 한옥 집은 꽁꽁 얼어버렸다. 뉴스에선 연일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한다고 겁을 줬다. 그래도 동장군이 한 걸음 물러섰는지 빗물받이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 배수 구멍을 타고 똑, 똑 떨어졌고 물방울은 마당을 꽝꽝 얼려버렸다. 아무래도 따스한 봄 햇살이 어르고 달래야 마음을 풀 것처럼 보였다. 찬바람 가려줄 벽이 하나도 없어 슬픈데 안동의 기록적인 추위에 집 전체가 덜덜 떨고 있었다. 눈 내리고 아무도 찾지 않은 마당에 우리 둘의 발자국만 어지러이 남았다.
공사는 중단되었다. 늦가을부터 공사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고 금세 겨울이 왔다. 찜찜한 기분으로 2022년을 보내야 하다니. 마무리된 공사라곤 철거와 예상 밖 기둥 교체뿐이라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는데 오히려 ‘이게 집이라고?’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한옥은 연약해 보였다. 층고를 높이기 위해 뒤집어엎은 바닥에 흙먼지가 나풀거리고, 서까래를 복원하기 위해 뻥 뚫린 천장엔 지푸라기가 대롱거렸으며 미처 제거하지 못한 벽지에 딱지가 눌러앉았다.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
멀쩡히 겨울을 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 불성실한 주인들은 근 한 달 만에 집을 찾은 것이다. 불쌍한 한옥집.
이리저리 난잡하게 늘어져 있는 각목, 나무판자와 전깃줄 그리고 잘려나간 썩은 밑동이 마당을 차지한 유일한 존재로 쓸모없어진 옛집의 파편들이 흰 눈 아래 묻혀 아무도 오지 않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든 한옥 상태를 봤다면 ‘이거 다시 집이 된다고?’라고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머릿속 걱정과 불안마저 얼어버렸는지 오히려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맑았다. 어차피 할 수 없는 일도 없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응? 누가 왔었나?”
“누가 왔었나?”
하릴없이 집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했다. 담벼락 사이에 보송보송한 500원짜리 동전만 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고양이인가 봐.”
인간이 없는 세상을 눈치 보지 않고 오갔을 상상을 하니 갑자기 즐거워졌다. 불현듯 마당에 못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짝꿍과 대못을 회수하려 허리를 굽히고 마당을 샅샅이 뒤지고 나니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오히려 잘 됐네.’
반드시 쉬어 가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슬프게도 나는 늘 그 타이밍을 놓치는 편이고 마지막 불씨까지 끌어다 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리고 그동안 못해본 모든 것 – 야식 먹으면서 TV 보기, 정오가 지나서 일어나기, 일어나서 안 씻기, 핸드폰만 붙들고 있기 등 – 을 보상심리로 이어가면서 한동안 일상 복귀가 어려워진다. 안 좋은 습관이다. 규칙적이고 성실하게 생활해야 삶이 피폐해지지 않는데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할 땐 쉬어 가지 않고 정작 성실해야 할 땐 늘어져 버린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내가 만든 규칙은 ‘일주일에 적어도 2번 야외 산책’이다. 춥든, 덥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필요하다 생각이 들면 산책을 한다. 꼭 정해놓은 날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이 풀리지 않고 머리가 굳어버렸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가 꽉 뭉쳤을 때 주저 없이 양말을 챙겨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산책의 핵심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있다. 어떤 생각도 계획도 떠올리지 않고 걸으며 그저 바깥세상을 본다. 하늘과 구름, 흙과 잡초, 지나가는 버스번호나 택시 색깔, 하교 시간 떠드는 아이들의 조잘대는 소리,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잠시 남의 일상에 가까워지면서 생각을 환기한다. 산책의 효과야 이미 세계적인 부호와 CEO들을 통해 증명되었지만, 직접 실천해 보기 전에는 와닿지 않는 법이다.
산책은 혼자 해야 한다. 함께 여행하는 중이거나 데이트 중이 아니라면 반드시 혼자 주변을 거닐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정의 굴곡이 잦아든다. 마침내 다시 집중할 힘을 얻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영혼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일을 할 수 있다. 글쎄, 산책이라기보다 쉬어가는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까? 반드시 주기적인 쉼이 필요하다. 누구든!
그렇게 12월이 가고 2023년이 되었다. 새해가 밝았고 꽃샘추위가 왔다. 2월 말에 재개된다던 공사는 시작할 기미가 없었고 현재 상황으론 계약상 공사 종료일인 3월 말에 맞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실장님, 3월 말까지 완공되는 거 맞나요?”
“3월이요? 그건 좀 힘든데, 급히 마무리하셔야 하는 건가요?”
“저희 계약 기간이 그때 까지잖아요.”
“... 네? 5월 말인데요?”
반복되는 상황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온 우주가 합심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인가!’
또 한 차례의 소통 오류로 일정이 연기되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럴 때면 학교 다닐 때 배운 시 구절이 떠오른다. ‘왜 사냐건 웃지요.’ 나도 허탈하게 웃어넘기는 수밖에 결국 마무리될 테니까 그냥 믿고 기다려보자.
한옥집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동안 우리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치열하게 싸웠다. 돈 벌기 위해 외주 작업을 하고, 요가 수업도 나가고, 이런저런 서류 처리를 하고 (제일 어렵다!)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 빈티지 가구를 찾아다녔고 덩달아 기분은 하루에도 수십 번 널뛰었다. 콘셉트 회의를 하며 즐거워했고, 기약 없는 공사 재개일에 불안해했다가 내 의견을 무시하는 짝꿍에게 성을 내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각자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상대방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곤 했다. 정말 사소한 부분을 가지고 귀를 막고 입만 나불거렸는데 이를테면 ‘거울 모양은 네모가 낫지. 무슨 소리야 타원형이어야지’라는 초등학생도 콧방귀를 칠 말다툼을 벌이다가 피곤해했다. 그러다가 회의감이 몰려왔다.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서 뭐 해.”
“그러게, 거울은 그냥 타원형 해.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디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고 싶다.”
“그러게, 리조트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하다가 썬베드에 누워서 진득한 망고 주스나 잔뜩 마시고 싶다.”
2022년 겨울, 되는 일이 없었다. 뚝 끊긴 의뢰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기 계발이려니 개인 작업에 몰두했다. 그나마 월세를 내고,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서로의 존재에 감사해했으며 따뜻하고 여유로운 감각을 그리워하며 바쁘게 살았다. 유독 춥고 바빴던 해의 겨울,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동남아 어딘가 커다란 야자수잎이 태양을 설핏 가려주는 해변가의 텁텁한 공기를 상상하며 여행을 대신했다. 이제 와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린 이 무렵 지독한 우울과 절망에 빠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