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지속하는 걸까.
돈 없이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은 무소유의 자연인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인류애적 인간으로서 그 어떤 성취감 없이도 그저 나눔만으로 만족을 얻는 인간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도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많이 누리며 누구보다 잘 살고 싶다. 그런 욕심을 모두 내려놓아서 이런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타고난 한량이라서 한없이 게을러져도 속 편한 체질 역시 아니다.
그렇다고 돈 벌 궁리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내가 시도하는 많은 것들이 어떻게 나의 밥벌이로 연결될 수 있을지 치열하고 지겹도록 고민한다. 그 누구보다도. 다만, 좀 우회적이고 은유적으로 궁리를 하는 것뿐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최소한 잃어버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탓에 이렇게 느리고 쉽게 길이 찾아지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돈에 집착할수록 멀리 보지 못하고 오직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도록 내 시야가 가둬진다. 한 때 길거리에 유행하듯 쫙 깔렸다가 사라진 조작된 인형 뽑기 같은 한탕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동전을 집어넣어도 상품을 탈 수 없는 자판기. 그런 거 말고. 우리 누구나 '심야식당'의 주인이 되고 싶은 로망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지 않나. 현실은 녹록지 않을지라도.
모든 것이 투자 대비 효과를 기대하는 성과주의 시대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꿈은 장래 돈벌이가 될 직업을 묻는 단어로 대체되었고, 미래에 대한 빠르고 안정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처럼 세상은 재촉한다. 모든 직업이 자격증 따듯 직관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속이 편할까. 쓸데없는 고민에 버리는 시간의 허비를 줄일 수 있을까. 그러면 더 행복한 세상에서 행복한 부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난 일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거 알지만 지금에 와서 나의 과거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무 일찍 꿈을 정했다는 점이다. 나는 창의성이라는 것의 의미를 몰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창의성인지 몰랐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디자이너를 꿈꿨고 주저 없이 직진했다. 다른 길도 있다는 걸 한 번만 고민해봤더라면, 다급하게 첫 직장에 취직하지 않고 잠시만 주저해봤더라면, 이렇게 뒤늦게 어른이 되어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덜 버겁지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너무 큰 확신에 비해 나는 내가 선택한 환경이 너무도 힘들었다.
jtbc의 '캠핑클럽'을 보다가 예전에 이효리가 뉴스룸에 나와서 했던 인터뷰 장면이 지나갔다. 당시 이효리의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말에 손석희는 "가능하지 않은 얘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고, 그녀는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 장면을 회상하며 문득 생각했다. 꿈을 꾸는 것조차 자꾸만 가성비를 바라고 독서량이 성적에 직접적인 효과를 누리길 바라는 요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나도 자꾸 그런 조급함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세상은 고효율의 가성비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서투른 요리 솜씨로 문을 연 가게는 오래가지 못하고,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장인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사람들은 서점이 사양산업이라고들 했지만, 책을 다르게 소비하고 책방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점은 힘겹지만 그 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이 결과가 수면으로 올라와야지만 그 가능성을 봐주는 탓에 자기 안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다. 똑같은 유투버도 몇 십만 구독자를 기록하며 수익을 내면 크리에이터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남들 다하는 거 따라 하는 팔로워 취급받기 십상이다. 팔로워가 크리에이터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수면으로 올라갈 때까지.
나도 빨리 빛을 보고 싶어 자주 다급해지곤 한다. 이게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저것으로 갈아탈까 하는 생각을 여태껏 아메리카노 마신 잔의 수만큼이나 많이 한 것 같다. 그럴 시간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나를 깊게 만드는 데 몰두했다면 더 좋았겠다고 항상 지나고 나서야 생각한다. 그래도 마음 저 한 구석에선 알고 있다. 돌아가는 길이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이 꾸준함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나만큼은 나를 기다려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