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지 않은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다시 직장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강을 건너와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시 직장생활을 할 자신도, 에너지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가져다준 시간적 여유는 내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다 주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나는 꽤 긴 시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프리랜서라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직장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프리랜서를 한다고 해서 완벽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업계와 조직의 성향이나 오래된 방식들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외주로 한다고 해도 조금 자유로워질 뿐 고질적인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얼 하며 먹고살며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내 일들을 이어나갈 것인가. 인생 최대의 난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데 최소한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는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새로 찾아야 했고 찾고 싶었다. 취미로 가졌던 일들, 일하면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들, 새로운 관심사들까지 나 스스로의 성향과 취향을 다시 처음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고백하자면 불안정한 프리랜서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갈 수 있었던 건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며 내가 나를 찾을 수 있게 전적으로 응원하고 서포트해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혼자였다면 이 불안함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결혼 전 보다 결혼 후에 훨씬 더 내가 나를 탐색하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는 못 느끼겠지만 마음 깊이 그를 존경하며, 그보다 성공해서 그의 월급을 무시해보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다.
물론, 아직까지는 빌어먹을 프리랜서다.
내가 새롭게 시도하고 마음과 시간을 쏟은 것들은 하나같이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새벽에 깨워서 "내가 뭘 팔 수 있을까? 난 뭘 해야 해?"와 같은 답 없는 질문을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일단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집 근처 작업실을 알아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걸 팔고 싶어 목공을 배워보기도 하고 빈티지 제품을 수입해볼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해온 일들과 내가 잘할 수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은 결국 다 손으로 만지고 사용할 수는 없는 것들 뿐이라는 걸.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나는 자꾸 그리로 돌아간다. 이미 강을 건넜는데도 자꾸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자꾸 까먹는 것뿐이었다.
선배 J와의 여행길에서 별생각 없이 "우리 팟캐스트나 한 번 해볼까요?"라고 던졌고, 선배는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였다. 본격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을 시도했던 것이. 우리는 원래 라이프스타일팀에서 함께 일하며 관련된 콘텐츠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짙었고 그걸로 글을 써서 잡지를 내려고 했었다. 나는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써왔기 때문에 글이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표현 도구였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뿐이었다는 걸 그때는 잘 몰라서 답답했다. 우리의 계획이 차일피일 느려지면서 이건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고,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던 찰나 생각지도 않게 팟캐스트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매회 사람들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정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기록이나 여행 같은 일상의 행위에서부터 잡지, 의자, 운동화 등 물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루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이것들을 재해석했다. 영감은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영화, tv 프로그램, 재미있게 읽었던 에세이도 다루었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면서 이런 영감의 시간을 우리 둘 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고 나누는 시간으로 확장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들과 각종 독서모임이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는 소규모 살롱을 기획했다. 주제를 정해 자료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영감을 주고받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의 참가비로는 우리가 살롱을 준비하면서 사서 읽은 책값도 충당하기 힘들었지만 우리는 지속했다.
지금은 잠시 멈춤 상태다. 살롱을 준비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고 있는데, 이것을 비즈니스화 시키기엔 수익성이 부족하고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공간이 없었다. 어느 순간 이것이 일인지 아닌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즐겁게 하려고 시작한 일이기에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때 더 즐거운 방식을 모색해보고 싶다.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내가 경험한 수많은 것들에 대해 기록했고 마케팅이나 디자인 관련 해외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처음 시작은 글 자체가 아니라 트렌드 분석과 소개가 주목적이었는데, 단순 소개가 싫어서 거기에 나의 해석을 얹다 보니 점점 사례가 아닌 나의 생각이 주가 되는 글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나 성향도 조금씩 변해가면서 내가 쓰는 글의 색도 변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를 하면서 썼던 글들은 이전의 글과 조금 달라졌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적인 내용을 글에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감정을 담기보다는 이성적인 글을 쓰려고 애썼다. 일기처럼 쓰던 글들은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세이 형태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 후부터는 내 속에 있는 내 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일하는 시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을 들이는 건 다름 아닌 '글쓰기'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뭔가가 되고도 싶었지만, 뭔가가 되려고만 글을 쓴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독서가 쾌락이기도 하듯이 나에겐 글쓰기가 가장 쾌락적인 행위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글이 읽히는 걸 기대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확인하는 끊임없는 매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못나고 못되고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나도 많이 발견했지만, 그래서 더 나를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이것들이 조금 더 깊고 진해졌을 땐 글로도 뭔가를 해보고 싶다.
아직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고 해서 가까운 미래에 돈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닌 것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며 조금 더 깊고 넓게 알고 싶은 것들이 해당된다. 어릴 적 향수와 오래된 공간들, 레트로 한 콘텐츠와 로컬 문화, 관련된 전시들,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달라지는 삶의 방식들.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만의 시선으로 이것들을 엮어내 보고 싶다.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지만 나의 추상적인 SNS 공간에는 나의 경험과 생각들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어떤 목표를 두는 것보다는 이것들의 모음집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방대한 취향의 아카이브를 만들어 놓고 싶다. 그것이 내게 어떤 구심점이 되어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관련된 글을 읽고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편집하며 취향을 이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 게으른 방식일지 모르겠다.
나는 왜 돈이 되지 않는 것들만 시도하면서 이걸로 지속하는 삶을 꿈꾸는 것일까. 언제 어디에서 어떤 해답을 찾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시도하고 있는 이 돈 안 되는 것들을 내 안에 보물창고처럼 차곡차곡 쌓아놓다 보면 언젠가 이것들을 꺼내어 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게 헛된 희망이라고 해도 이 헛된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대답 대신 보여줄 수 있는 걸 만들어놓고 싶다.
물론 나도 돈이 되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는 있지만, 무엇이든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다. 억지로 몇 번 해봤는데, 안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