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이 기웃거리기

by 흔적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호기심이고 어디까지가 일을 위한 자기 계발에 해당되는 걸까.


일은 일이고 나는 나라고 굳게 선을 그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그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해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행에서 새로운 샵이나 카페, 미술관에 가는 건 오로지 취향에 따르는 선택이긴 하지만, 새로운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항상 따라온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내가 무언가 노트에 필기할 만큼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인사이트가 존재할 때 더 배가 된다.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런 성향이 만들어진 건데, 예전 회사에서 트렌드 세미나를 준비할 땐 해외 사이트의 사례 리서치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모두 섭렵해야 했다. 해석과 관점에 따라 사회와 소비자의 변화를 상징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매달렸다. 정확히 어떤 것에 매달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손에 붙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고 싶은 사람처럼 허기진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경험을 만들어냈다. 일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1,000개가 넘는 각종 사이트와 브랜드, 인플루언서들 계정을 팔로우하고 소식을 섭렵하느라 난잡해진 정보의 바다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소식들, 내가 언제 팔로우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계정들, 관심사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섞여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대로 그때의 나를 닮아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잘못 찾아간 곳엔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후로부터는 뭔가 더 불특정한 일들을 비정기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나 스스로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섭렵한 인간 빅데이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의 관심과 취향을 더 깊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이유를 딱히 명확하게 설명하긴 애매하지만,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공간 혹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졌다. 거침없이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며 누구와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도 좀 거기 끼어볼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멤버십에 가입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얼마간 출근 도장을 찍기도 했고, 취향별로 모이는 모임의 설명회를 들어보기도 했다.


어떤 마음이었다고 해야 할까. 반은 순수했고 반은 사사로웠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도 싶었고 인맥을 만들고도 싶었고 나는 이런 걸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알리고도 싶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의욕이 충만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조심스러워하며 경계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계 없이 기웃거리다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못 찾아갔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직감적으로 하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냥 어디가 불편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영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난 정말 열려있는 것 같으면서도 닫혀있고 닫혀있는 것 같으면서도 애매하게 열린 인간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찾아가고 경험했던 장소와 모임들이 별로였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도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무언가였으므로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말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취향을 찾아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게는 나와 '다름'을 확인하는 여러 번의 에피소드가 존재했는데, 그 과정은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인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사람'이라는 고정된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경험을 통해 조금씩 색이 옅어지기도 하고 짙어지기도 하면서 변화를 겪고 있는 걸 느꼈다. 자연스럽게. 얼마나 더 발전을 했고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나 더 나다워졌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더 많이 잘못 찾아가고 당황스러운 일을 겪을수록 나는 내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또렷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담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이건 취향이라기보다는 성향의 교차점이 1도 없었던 '잘못 찾아간' 이야기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작은 사업에 지원한 적이 있다. 프리랜서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기본적인 절차만 지키면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고 그를 통해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제품을 생산하거나 기획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한 마음이었고 1차 서류에 통과되어 어느 청년센터에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발걸음 했던 나는 엉덩이가 아프게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강사의 이력 소개를 꽤 긴 시간을 할애하며 들어야 했고, 그다음엔 조를 짜서 구호를 만들고 규칙을 정했다. 난데없이 고민을 이야기하라고도 했다. 무엇에 대한 고민이든 상관없다니, 여기서 인생 상담이라도 해주려는 것인가 싶었다. 밥도 먹었고 정말 어릴 때도 하지 않았던 온갖 레크레이션에 참여도 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앞으로 몇 회나 더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암담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난 정말 공공기관에 맞지 않는 인간이구나



이 역시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다. 우린 서로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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