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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헥토르 Aug 05. 2018

휴가 - 바르샤바, 올드타운

폴란드는 굳이 중동과 한국을 비교하면 자전거도로가 상당히 잘되어 있었다. 이러한 덕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주말에도 자전거로 시내라든지 유적지, 아름다운 숲과 연못을 자유로이 방문하여 몸과 마음을 두 개다 만족하는 일석이조의 도시였다. 물론 이러한 만족을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계절은 딱 여름이긴 하지만. (그 외의 계절은 너무 추워 엄두를 내기 어렵다.) 

자전거를 실컷 달렸더니 어느 세 Nowy Siwiat (신세계 거리) 로 들어왔다. 이 곳의 초입에 들어 오는 순간 이제 바르샤바의 중심인 올드타운에 들어서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희망 없는 시대의 우리 운명이라고 누군가가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계속해서 전쟁과 암흑기에 살아왔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희망이 곳곳에 있는 세상이라 살기만 하면 뭐든 될 것 같은 세계이기도 하다. 신세계 거리는 괜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세계를 잘 알고 갈망하는 정신에 입각에 만들어 지지 않았을 까도 생각해본다. 이 거리에서 귀에 이어폰을 꼽고 젊은 하늘색 후두티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주변의 눈치를 신경 안 쓰고 뜀걸음 하면서 자기만의 댄스를 괜히 할 리가 없다. 세상에는 희망도 즐거움도 있는 곳이니까! 그 노인의 댄스는 이 신세계를 대표적으로 상징이나 하는 듯한 Ceremony 같기도 하였으며, 그 신세계의 사람들 역시 이유 없이 춤추는 노인을 신기한 표정으로 시진을 찍어보곤 한다. 아직 신세계가 낯선가 보다.  



신세계의 주말은 너무나도 화창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어서 때로는 그 흐름대로 몸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순간에도 직면하기 까지 했다. 여기에는 행복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아코디언의 연주와 함께 우유팩을 동전받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는 어느 중동의 소년. 히잡을 쓰고 거리에 무릎을 꿇은 채 동전의 희망을 기다리는 어느 여인.  

몇 미터 안돼서 해질 노을 녘을 보며 Let it be 의 곡을 기타로 감미롭게 하는 어느 서양청년의 버스킹 연주 앞에서 감성 젖은 폴란드 소녀들. 거기에 현재적인 바이올린으로 광장의 메아리를 울리게 하는 수염투성이의 남정네. 좁은 골목에 위치하여 클라리넷 연주로 그 소리를 온 벽에 부딪히게 하여 골목을 더욱더 찬란하게 울리는 여성 여행가. 이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중동의 소년이나 히잡을 착용한 여성보다는 일일 수입이 더 많을 것이라…. 

Nowy Siwiat 거리를 631도로에서 시작하여 광장을 지나 쭉 가다 보면 마치 역사의 장면장면 하나하나가 내 옆을 스쳐가며, 옛 사람을 추억하게 만든다. 

혼천의를 들고 과학센터 앞에 서있는 코페르니쿠스 동상, 몇 걸음만 가다 보면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다는 성십자가 교회가 나타난다. 

조금만 더 쭉 가면 대통령궁이 나오고, 그 앞에 3국분할된 폴란드의 운명을 되살리기 위해 분전했던 포니아토프스키의 동상이 비장하게 있다. 

그 주위에 폴란드의 아픔을 시로써 함께한 또 한 명의 사나이,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늠름하게 서있다. 

광장 한복판에는 지그문크 3세 왕 동상이 우뚝 서있고, 이러한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천도한 이 폴란드 왕이 다시 돌아 와서 본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사뭇 궁금하구나. 

조금만 더 깊숙이 가면 비스툴라 강에서 태어나 어부와 결혼해 지금의 바르샤바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어공주 동상이 수호신으로서 칼과 방패로 폴란드의 국운을 지켜주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닮아가는 과정에 들어가고 싶어 문턱에 올라섰다 내려 앉았다 하는 내 자신이 그려진다. 타인을 통해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이 신세계거리에서 열심히 노래를 열창하는 노인부부에 크게 감동하고 그 용기에 부러워하는 나 사신을 발견하면서 난 언제 저런 용기를 가진 동기를 얻게 될 수 있을까 라고 가만 중얼거린다.  

태양이 너무 따가워 그림자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칠 곳을 찾아서 웅크린 어느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못해 따가운 7월 마지막 일요일 오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의 풍성함이 물씬 느껴지는 폴란드였다. 사람 냄새도 좋지만 숲 냄새도 꽤 익숙하고, 더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전에 자연에서 나온 하나의 생물이라서 그럴까? 원래 혼자가 되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적어도 나는.  


도시 곳곳에서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 항거했던 폴란드인의 Uprising을 기념하는 장소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위에 사진과 같이 우리는 건물, 숲, 기념관 앞에 Uprising을 상징하는 마크를 볼 수 있다. 폴란드의 저항정신이 삶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어찌 그들이 역사를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국심이 절로 나오는 이러한 도시 곳곳의 1944년의 흔적은 아직도 살아 숨쉰다. 


1970년 12월 7일 비가 내리는 날, 바르샤바에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방문한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게토의 유대인이 나치에 맞서 28일간 봉기하였다가 5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일을 기리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온몸으로 폴란드 국민들에게 사죄를 했던 그날, 역사는 지난날의 참상과 반성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언론들은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 선 것은 독일 전체다.’라고 평하며 빌리 브란트의 용기를 높게 평가하였고, 이 일로 1971년에는 유럽의 긴장완화 기여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지금의 선진적인 독일을 만드는 데에 여러 전환점 중 하나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보더라도 어떤 집단에 대해 깊은 고통을 주고 거기에 대해서 사과를 하거나 사죄의 뜻을 보이는 리더들의 모습을 많이 찾기 어렵다. 

특히 현대사에서 잔인무도 했던 2차세계대전에 대해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했던 1970년도 당시의 정황을 볼 때면 저러한 용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빌리 브란트는 몸소 그 용기를 실천한 총리이자 그 용기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폴란드는 온몸으로 사죄한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에 감동하고,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바르샤바 유대인 박물관 옆에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모습을 담아 기념비를 세웠고, 지금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세워져 있다. 


인간은 수도 없이 멍청한 일을 많이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인터뷰에서 인간은 역사적으로 볼 때 Stupid 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무수하다고 얘기 한 것처럼 우리는 이 순간에도 멍청한 결정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일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그저 남의 일처럼 애써 넘어가려는 인간의 모습들이 더욱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스스로 만들어가는 셈이다. 

정치인도 그렇고 우리 개개인도 하물며 미안하다는 얘기를 평생 살면서 자주 하고 살아 가는데. 이 자랑스런 우리 회사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해 직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주거나, 회사에 비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경우에 그에 대한 잘못을 사과는 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정도의 자세는 가져야 하지 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더불어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 시절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기대해보며,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쟁을 통해 경제성장의 기폭적인 면을 보면서 동시에 전쟁간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작업도 함께 가져 갈 것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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