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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r 23. 2024

이제 당신의 얼굴이 썩을 차례

육아에서 남편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5년 전, 정신과의사 정우열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그 무렵 그의 글과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있었다. 아빠로서 전업육아를 했던 그는, 일반적으로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남자이자 정신과의사의 눈으로 풀어내곤 했다. 그러니까 그쯤에 나의 화두는, '아기라는 생물체를 대체 어떻게 키우는 건가',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이며 방법은 무엇인가', '아이의 성장/발달/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엄마로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게 아니라, 아이 키우다 내가 이상해지고 있는데, 아니 미쳐가는 것 같은데, 나만 이런 건지 다들 이런 건지, 괜찮은 건지 아니라면 뭘 어째야 하는 건지, 그런 것들이었다.


강연 내용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기저기 많이 아픈데, 어디가 가장 아픈지' (질문지로) 물었는데, 한 엄마의 답이 이랬단다. '목. 하도 소리를 질러서. ㅋㅋㅋㅋ' 사람들은 웃었다. 아마도 나 같은 엄마들이 모였을 강연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같이 웃으며, 육아가 전혀 즐겁지 않은 것도, 때로 광인같이 괴물같이 돌변하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닐까, 가슴이 잠깐 부풀었다.


하지만 질문과 답을 통해 나는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를 벗어났고,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걸 인정했다.

 

그런 나조차, 어떤 질문을 듣고 '저분은 진짜 치료가 필요한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딘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는 돌이 좀 지났다고 했던가, 처음부터 아기를 보는 게 너무 힘들고 둘이 보내는 시간이 괴로웠다, 몸이 계속 아팠고, 감정적으로도 우울해서 아기를 돌보는 일을 비롯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서 자기가 '요양'을 하는 동안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지만 남편이 많은 일을 했는데, 남편도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용이었다.


강연자는 비슷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답을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육아우울증이 심한 아내가 괜찮아지도록 남편이 열심히 도왔다, 본인의 일도 하면서 육아도 가사도 감당했다, 덕분에 아내는 잃었던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아내의 얼굴이 환해질수록 남편의 얼굴은 점점 썩어갔다, 2년쯤 지나자 아내는 우울증이 나았고, 이번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려 찾아왔다. 이런 경우가 많으니 질문자도 남편분을 같이 살펴야 할 거라고. 이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뒤는 흐릿하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첫 연인이었다. 연애 4년 반, 그리고 신혼 4년 동안 싸운 적이 없었다. 정말 '천생연분' 뭐 그런 거라 믿었고, 평생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아기가 나오고 싸우는 일이 생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그 의미를 깨닫기까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괜찮아지(려고 노력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 이렇게 셋은 불안한 삼각관계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중요한데, 각각에 대한 마음이 같지 않다. 특히 남편과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라는 공통의 최고 소중한 존재가 생기고 관계의 균열을 겪는다.


서로가 얼마나 다른 타인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옳은지,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무얼 어떻게 어떤 마음과 태도로 할지에 대해, 특히 상대의 마땅한 역할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지금까지 서로의 다름이 좋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상관없기도 했는데, 자녀의 문제라면 양상이 다르다. 열심이면 열심인 대로, 대충이면 대충인 대로, 각자는 부모로서 자신의 세계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여 맹렬히 다져가는데, 그것은 배우자로 혹은 내 아이의 부모로 상대를 택했을 때 참고한 사항이 분명히 아니었다.


이 상황이 불행의 색으로 점점 진하게 칠해지는 것은, 둘 모두에게 여력이 없는 경우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것은 꼭 돈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체력도, 정신력도 역시 맹렬하게 가난해지면서, 상대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기를, 실질적으로 도와주기를,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기를 처절하게 원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도 인간이므로, 결국 이룰 수 없는 것을 서로에게 원하는 형국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내가 정우열의 강연을 들은 2019년 여름, 첫째가 여덟 살이고 셋째가 세 살이던 때, 나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늠하려 했던 것이다. 바닥이 없는 수렁으로 빠져가는 나를 과연 남편이 언제까지 붙들며 버틸 수 있을지, 아니면 이미 그의 멱살을 잡고 사이좋게 나락으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중인지. 그 끝에 우리는 얼마큼 떨어져 있을지.





얼마 전엔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로 남편과 싸웠다.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가 '오빠는 주양육자가 아니니까 모르잖아' 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정색을 하고 자기가 왜 주양육자가 아니냐고 따지는 것이다. 본인은 한 번도 자신이 주양육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며,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감당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까 무슨 역린이라도 건드렸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여 나를 기가 막히게 했던 것인데, 나 역시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심장을 스치며 '당신이 부양을 담당하며 육아와 가사까지 최선을 다한 건 알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24시간 365일 아이들 옆에 있던 나를 두고 이 무슨...' 이런 생각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만큼 지난 12년간의 삶에 대하여, 그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에 대하여 우리에겐 겸양이란 것이 끼어들 틈이 코딱지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신이 조금 들고 나서는, 끝내 각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던 이 싸움이 좀 웃겼는데, 더 웃겼던 건 나중에 남편이 사실 '주양육자'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역시 토론을 시작할 때는 개념 정의부터 하고 볼 일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당신은 별로 육아에 참여하지/최선을 다하지 않았잖아'라고 해석하고는 울컥해서 버럭했다니.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남편의 아빠로서의 삶도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게 해본다. 회사-집-교회 말고 사생활을 거의 없앴고, 그 모든 곳에서 제 역할을 했으며(한 집사님은 남편 보고 무려 ‘우리 교회의 션'이라 했다), 회식도 아니고 야근을 할 때마다 내게 미안해하며 '허락'을 받았다(옆에서 듣던 동료가 아주 의아해했다고). 첫째 때부터 주말엔 나에게 '나가라' 줄기차게 말했는데(그러나 내가 못 그랬다), 우울증이 심해진 이후 정말 내가 줄기차게 그렇게 했을 때 (3년 동안)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시댁에서 자고 왔다. 주중 저녁에 드라마작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2년 동안) 휴가를 쪼개 썼다. 나는 때때로 전국 곳곳으로, 한 번은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덕에 나는, 이제 거의 완전히 나로 돌아온 것 같다. 지난 시간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리며, 유쾌하진 않지만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을 보니... 확실히 새까매졌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게다가 지혜롭고 인내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어서, 그렇게 해주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쪽의 역할도 아주 없진 않았는데, 두 가지만 살짝 얹어보자면 이렇다.


하나는 기술적인 건데, 나 없이 남편이 아이들을 돌볼 때 내가 정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식사는 몇 시에 무얼 먹이고, 간식은 언제 얼마큼 주고, 낮잠은 어떻게 해야 하며, 티비 시청은 최대 몇 시간이고, 바깥놀이는 꼭... 그렇게 식단과 시간표를 구체적으로 짜서 내밀었다. 그게 남편을 돕는 줄 알았다. 남편은 나만큼 모르고 서투르니까. 그것이 남편을, 아빠로서의 인간을 소극적이게 만든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도 육아에 서툰 아빠로 남게 만들고 육아의 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건 정우열의 강연 중에 나온 이야기인데, 이를테면 아이들을 맡기고 나왔는데 남편이 사진을 보내왔다고 하자. 서너 살 아이들이 후줄근한 차림새로 분홍빛의 왕 큰 소시지를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사진을. 그럴 때 "아, 옷이 그게 뭐야... 세수는 시킨 거야? 그리고 애들한테 소시지를 먹이면 어떡해... 내가 못 살아. 소시지가 얼마나 첨가물이 많은데..." 하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올라도, "와! 애들 진짜 좋아하겠네! 역시 아빠랑 있으니까 소시지도 먹을 수 있고 좋겠다!(쌍따봉!!)" 이런 식으로 말하라는 거다.


(지금도 남편 입장에선 모자라겠지만) 이걸 체화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어떤 부분에선 나보다도 섬세한 남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남자 혹은 남편이란 존재의 무심함과 서투름에 기가 막힐 때가 많았다. 뭐가 좋은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안할수록 내 식대로 하길 요구하지만, 확실히 세상 모든 인간은 남의 지시를 받는 것보다 자기 멋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럴 때 발전한다. 조금 마음을 내려놓으면, 나/여자/엄마는 하지 못하는 어떤 일들을 하는 장면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질적인 이야기다. 나는 확실히 내 시간을 가지면서, 집을 벗어나거나 아이들과 떨어져서,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갖고, 무언가를 배우고 여행을 다니면서 생기가 돌아오고 행복해졌다. 다녀오면 집에서 훨씬 많이 웃었고, 여유를 보였고, 힘을 냈고, 아이들과 더 잘 지냈다. 나만 좋은 데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남편이 나에게 자유를 주고 아빠로서 독박육아를 하는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 차례인가, 지난해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다행히 나도 곳간에 여유가 좀 생겼다. 아이들이 크기도 했고.


야근이 잦아졌지만 (나 혼자 아이들과 보내는 저녁 일과와 그 후폭풍에 대해) 그를 걱정시키지 않는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게임 시간을 갖도록 격려한다. 어쩌다 벙개 술모임에 간다고 했을 때 막지 않는다. 얼마 전엔 5박6일 여행을 허락했다. 그가 나날이 얼마나 행복에 겨워하던지, 돌아와 몰고 온 생기가 얼마나 강력했던지(물론 빛의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일상은 그런 마력이 있다), 나 역시 이런 일들을 이어갈 생각이다.



내가 없는 날마다 남편은 삼겹살을 구웠다. “오늘은 엄마가 없어서 슬픈 날이야. 우리, 삼겹살이나 먹자.” 아이들은 내가 외출 준비를 하면 외친다. "우와! 오늘 삼겹살 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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