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도 헤도헨 Apr 05. 2024

사연 많은 빌런, 엄마

마지막 말만큼은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분명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몰랐는데, 어느새 내가 엄마와 똑같은 말을 우리 아이에게 하고 있더라'는 경험 말이다.  /18-19쪽

물론 부모가 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고, 나의 하루는 온전히 아기의 것이 되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자신의 부모님이 어떤 고충을 겪었는지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연스레 부모님의 마음에 더 공감하게 되고, 부모님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부모가 된 당신은 아이의 처지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24-25쪽


ㅡ필리파 페리, <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자라면서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세 가지가 있었다.


밥 먹을 땐 밥만 보고 먹어.

그냥 '네' 해.

나가.


물론 모두 나의 엄마가 한 말이다. 나는 언니와 동생보다 천 배쯤 많이 들었다. 너무너무 싫은 말이어서, 정말 너무나 싫어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그 비슷한 말을 해도 감정이 삐쭉거렸다.


어떻게 밥 먹을 때 밥만 보고 먹나? 짐승도 아니고. 입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벌 받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솔선수범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정말 '밥만 보고 먹는' 날이 많았다. 그런 때면 나는 곧잘 시무룩해졌고, 목이 콱 메는 것 같았다. 밥 먹는 일이,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고 천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차차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나는 엄마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런 대화와 웃음, 그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실제로 소화도 잘될 뿐 아니라, 식사라는 행위는 원래 생물학적 필요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라고.


그냥 '네' 하는 것은, 일단 어려웠다. 동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네'라고 하지? 할 말이 남았는데, 의견이 다른데, 질문이 있는데, 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말이 맞고, 나를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길 수 없으니까 힘으로 누르는 거라고. 생각도 많고, 의심도 많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는, 그럼에도 그 말에 따르는 일이 드물었다. 당연히 혼나는 일이 많았고, 머리가 커지면서 언쟁으로 번졌다.


그러다 보면, 엄마 입에선 결국 "나가!"라는 말이 나왔는데, 거기서 나는 번번이 졌다. 반격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나가버리거나 내가 왜 나가냐고 반문해야 하는데... 나는 언제나 뒷일을 세밀하게도 생각하는 타입인 데다 겁이 많았고, 확실히 여긴 엄마 집이었다. 보란 듯이 짐을 싸고, 일단 나가버리는 퍼포먼스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나는 알 것 같았다. 후자에 대해서는, 속으로는 몇 번이고 '나가라고 할 거면서,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그럼 나를 왜 낳았느냐?'라고 되받았지만, 역시 입밖에 내지 못했다. 그렇게 따져 물으면 엄마가 뭐라고 했을지 모르겠는데, 나로서는 그 질문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나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불을 끄고 누워, 이불 속에 웅크린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갈 데도 없는데. 있을 곳도 없는데. 어디까지가 안전한 곳인지 모르는 캄캄한 곳에 숨어서, 무수한 상상력이 이끄는 대로, 가장 비참한 그러면서 가장 가능한 죽음의 방식을 많이도 떠올렸다. 아마도 이런 시간들이, 나의 기본적인 기질에 더하여, 나의 우울과 불안을 키웠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니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는, 그런 다짐을 새삼 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생각들은 그야말로 내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을, 내가 했다.


정신없이 밥상을 차리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 분배하고, 잘 먹는지 확인하며 먹는 걸 돕고, 겨우 내 입에도 밥 한 숟가락 들어가려는데, 끊임없이 내게 무언가 묻고, 요구하고, 바라는 말이 날아와 꽂힌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주의를 쪼개서 귀를 기울여, 뇌를 헤집어서 정보를 찾아내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려 온건하게 전달하며, 가슴을 두드려 따스함을 뽑아내야 한다. 세 아이가 동시에 이야기하다(진정한 서라운드!), 자기 말이 안 끝났다고, 자기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고, 싸우고 울고... 그러다 밥은 남고... 남긴 밥을 두고 먹을지 버릴지 고민하는 일은, 나를 한계에 이를 만큼 지치게 하곤 했다.


그럴 때 튀어나왔다. 제발 밥 먹을 땐 밥을 먹으라고. 아무 말 하지 말고 밥만 보고 먹으라고. 전혀 납득되지 않은 황당한 눈동자들을 보고, 나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정말이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내 밥그릇만 쳐다보았다.


나는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매개보다 언어로 소통하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첫째를 키울 때, 그 작고 어린 아이가 하는 말에 깊고도 넓은, 긴 대답을 연이어 하는 내게,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아이에게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넌지시 어떤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첫째는 언어 발달이 특별히 빨랐고, 나는 아이와 하는 대화에서 희열을 느끼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이는 욕구와 불안과 결핍이 어우러져 있고, 미성숙과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어떠함이 무례함으로 표현되기도 하므로, 또 나의 에너지와 시간과 들을 귀 역시 한정된 자원이므로, 아이의 자신의 입장에만 충실한 말들은 내 신경을 거스르곤 했다. 나는 설명을 하다가, 설득을 하다가, 타협을 하다가, 협박과 겁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얻은 것 없이, 길과 끝을 알 수 없는 곳에 서서 분을 뿜다 삭이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니, 비슷한 플롯의 기미가 보이면, 일순간 피곤해져서는 "그냥 '네'라고 하라고. 잔말 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말만큼은 정말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밑밥 회수가 안 되는 글이 되어도 좋으니 '이것만은 하지 않았습니다'로 끝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역시, 하고 말았다.


늘 그렇듯이, 어떤 일이 시작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어떤 일로 둘째를 혼내기 시작했는데, 착하고 순둥한 줄만 알았던, 게다가 말이 어딘가 어눌하고 반응도 반 박자 늦어서 언쟁의 낌새도 없던 그 딸이 감정을 담아 말대꾸를 했다. 또박또박, 따박따박.


첫째나 셋째의 사고구조나 대화체계는 (솔직히 아직은) 내 손안에 있고, 빤히 보이는데, 둘째는 언제나 내게 물음표인 아이로서, 그의 반격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열한 살짜리 아이에게 내가 논리로든 배짱으로든 질 리가 없는데... 대화도, 토론도 같은 지평 위에서 하는 일이다. 딸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고, 내 반격은 사뿐히 튕겨버리는 아이 앞에서 내가 결국 던진 필살기는... "그럴 거면, 나가!"였다.


스스로도 황망해서 귀가 윙윙거리는데, 둘째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럴 거면 왜 낳았어?
엄마가 낳았으니 엄마가 책임져야지!!




나는 거기서 좀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사람이 이성을 잃고 화라는 감정에 휘둘리는 데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럴 때에는, 특히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들과의 사이에서는, 권력 혹은 권위에 어떤 위협을 받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럴 때 내가 못나 보이고, 여기서 삐끗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설 것 같은 위기의식이 파밧, 올라온다.


그날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아이를 따로 불러 마주앉았다. 눈빛부터 표정, 자세까지 경계태세로 충만한 아이에게 내가 처음 한 말은, "너 말 진짜 잘하더라.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당할 줄만 알았는데. 아주 잘했어!" 조소 섞인 반어가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정중한 칭찬이었다. 아이도 의외의 말에 황당했는지, 눈이 똥그래져서는 경계를 확 풀었다. 나는 이런저런 훈계와 사랑 고백을 한 뒤, 정색을 하고 덧붙였다.




그리고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미안해.
그 말은 엄마가 너무나 화가 나서 한 말이지,
정말로 너 보고 나가라는 게 아니야.
엄마가 혹시 다음에 또 그 말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나가면 안 돼. 알았지?




아이는 이번에도 똥그란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아이를 키울 때는, '절대로 엄마처럼 하지 않을 거야.' 그런 다짐으로 나를 무장했었다. 한동안 그런 나와 싸우기라도 한 것 같은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엄마를 많이 이해하고 엄마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는데, 아이들에게 '엄마는 왜 그러느냐'는 불만 서린 메시지를 접할 때 나는 사연 많은 빌런이 되어 하소연이 솟아난다. '내 입장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너희는 말해도 분명히 모를 것이며, 언젠가 결국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어떤 마땅함과 정당성에 취해, 내가 아이였을 때 엄마를 향해 그토록 원했던 것과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무력화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언젠가 엄마인 나를 이해하는) 그런 일이 기필코 일어난다 해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도 기쁠 것 같지가 않다.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의 편이 되는 것은, 자식이었던 적도 있다며 더욱 당당히 엄마 편으로 거듭나는 것은, 나로선 어딘가 비겁하게 느껴진달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해받는 엄마'가 되는 것은 최후의 보루 같은 일이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거다. 어쨌거나 엄마가 되고 말았으니. 한낱 내가 세상은 바꿀 수 없어도, 내 아이들의 입장과 처지를 공감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아니 해볼 수 있겠지.



알았어. 그러자.



이전 25화 딸의 생파는 처음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