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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r 16. 2024

주크박스도 되고, 이야기보따리도 가능하다

아이가 잠들면 내가 뚫고 나온다.

잠은 살아있는 동안의 죽음이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며, 삶이기도 하고 죽음이기도 하다. '잠'에 '삶'과 '죽음'이 포개어져 있는 것처럼, '엄마'엔 '나'와 '아기에 대한 사랑'이 포개어져 있다. 엄마는 내가 아니면서 나이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아기를, 그러니까 나의 확장판이자 타인인 존재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기를 재우는 일'에는 '엄마'와 '잠'이 포개어져 있는데, 아기를 잠에 들게 하는 것은 확실히 가장 내밀하고 핵심적인 엄마의 일로, 육아에서 절대 불가피한 노동이자, 한편으로 육아에서 놓이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일이다. 아기를, 타인을 사랑하는 일에서 도망치기 위해, 내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아기를 죽음에 밀어넣으려고 발버둥치는 일 같다.


잠에 드는 순간. 그 순간은 기적 같다. 기적처럼 삶이 뒤집어진다. 아기가 잠들기를 기적을 기다리듯 기다리다, 마침내 내가 뚫고 나온다. 사랑에 지친, 오직 나인 내가.





아기를 재우는 일이 어떤 류의 난관인지 정말 몰랐었다. 잠은... 그냥 자는 거 아닌가? 밤이 되면, 피곤해지면 졸려지지 않나? 어둡게 하고, 자장가 좀 부르면 잠들어야 하지 않나? (그런 '천사 아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조카가 그랬다.)


이 '상식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산산이 깨어졌고, 날이 갈수록 아기는 절대로 그냥 자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피곤하고 졸려도 도대체 왜 때문인지 잠드는 것을 어려워하며, 재우는 과정은 형식상 일종의 '기술'이지만 본질적으로 아기 혹은 나 스스로를 상대로 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했다.


나는 그 기술을 익혀 갔다. 말 그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날마다, 한 번 재울 때에도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며 제발 이번에는 먹히기를, 그래서 아기가 저 세상, 아니 꿈나라로 가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안고(두 팔로 가슴에 포옥, 혹은 어깨에 얹듯이, 아니면 접힌 팔에 기댄 채로 눕혀서), 도구를 사용하고(아기띠, 힙시트, 포대기, 유모차), 소리를 이용했다(음악을 들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거나 주문을 외우듯 기도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애원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나도 울어버렸다).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은, 그게 '올바른 방법'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젖을 물려 재웠다(나는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것이다). 먹이고 놀린 다음 재운(이른바 먹-놀-잠) 때에 비해 더 자주 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젖을 물린 채로 나도 누워서 심지어 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정석대로 시도하긴 했으나 웬만해선 밸붕이었다(실제로 첫째에 이어 둘째도, 셋째도 젖을 물려 재웠다).


물론 젖을 떼고 나면 다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사이 나는 몸과 정신의 전열을 가다듬었고, 아기에 대해 조금은 감을 잡았다.


일단 요행의 방법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날마다 유모차 산책을 했다. 나는 햇볕을 쏘이며 걸었고, 도서관과 마트와 빵집과 떡집과 문구점에 들렀다. 아니면 포대기로 업고 내 할 일을 했다. 양치, 세수부터 요리와 설거지, 정리와 청소, 전화 통화도 하고 미친 척 춤도 췄다. 아기는 소리 없이(!) 잠들어 있곤 했다. 아기에게 집중하고 아기만 쳐다보며 재우려 할 때보다, 이런 일상의 움직임과 소리, 리듬 혹은 분위기 속에서 아기가 더 잘 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바란 것은 '요행'이 아니라, 아기를 재우는 데 혹시 실패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내 일을 했잖아. 시간을 날려버린 것은 아니야, 진정해."


물론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 목소리로 노래가 이어지면, 아기가 일단 울음을 그쳤다.) 아기를 안거나 업고, 아이가 무거워지고 안정을 찾으면 같이 누운 채로. 나는 놀랍도록 많은 동요를 외웠다. 한 시간은 기본이었던 첫째를 재우는 동안, 같은 곡을 반복하다 진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어쩌다 한두 번 반복은 허용해도, 한 번 재울 때 서른 곡 이상이 필요했다. 다행히 동요의 세계는 넓었다.


'멋쟁이 토마토'는 부르면 흥겨웠다. 추임새는 진심으로 튀어나왔다. 족히 수천 번은 불렀을 '섬집 아기'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부르면 가슴이 일렁인다. 명곡이란 이런 게 아닐까, 혼자서 경건해지곤 했다. 1,2,3절이 매우 헷갈리는 '피노키오'는 부를 때마다 슬펐다. 이건 동요가 아니잖아... '아이들은'은 처음 알게 된 노래였는데, 부르다 말고 멍하니 감탄했다. 울컥해져서 정말 눈물이 나온 적도 있었다. (주책이지 뭔가. 하지만 아기를 키우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감흥이어서, 돌아간다 해도 다시 부릴 주책이다.)


아이들은 / 작사 선용, 작곡 정윤환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찬 것은
집집마다 어린 해가 자라고 있어서다
그 해가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를 거야 아이들이 해인 것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나나나나나나나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기억을 헤집어 가사를 다시 외우며 '노을'을 부를 때면, 어릴 때 지는 해를 보면서 그 노래를 불렀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그런 마법 같은 찰나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상스러울 만큼 내가 좋아한 노래는 '향수'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갑자기 칭얼대거나, (말을 하고 나선) 다른 노래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라고 하는 순간 어떤 심상에 빠져서 기어코 5절까지 불러야만 했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드흘, 꾸훔엔드흘~ 이잊히일 리히야."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나는 동요가 줄줄 나왔다. 툭 치면 좌륵. 영혼이 없던 날도 많았다. 주크박스가 된 것이다.


허망하게도, 첫째는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 노래 말고 '이야기'를 원했다. (하지만 둘째, 셋째 때는 따로 기술 연마할 필요 없이 유용하게 썼으니, 나를 훈련시켰던 첫째에게 영광을 돌린다.) 나는 이번엔, 알고 있는 모든 옛날이야기를 끌어내 풀어놓았다.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 토끼와 거북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은혜 갚은 제비,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라푼젤, 피노키오, 빨간 모자, 성냥팔이 소녀, 개미와 베짱이,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의 좋은 점은, 가사를 까먹거나 박자를 놓친다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조금 아리까리한 것은(그런 부분이 꽤 많았다) 지어내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얼마든지 이야기를 변형하고 늘이거나 줄일 수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는 항상 다른 식으로 잘난 척을 했다. '백설공주'에서 왕비인 마녀가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쓰는 계략은 때마다 달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변형은, '신데렐라'에서 마법이 풀리는 순간이다. 열두 시가 되는 순간, '댕, 대앵, 대애앵, 대애애엥~ ...' 가능한 천천히, 최대한 나른하게 종을 쳤다. 아직 열두 번이 채 울리기 전 아이 눈이 스르르 감기면, 유리구두고 나발이고 나는 다 내던지고 현실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바꾼다 해도, 이야기는 금방 바닥났다. 세상엔 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누군가에게 전해줄 만큼 되려면 이야기가 입에, 마음에 어느 정도는 붙어야 한다. 그 점에서 노래와 다르다면 다르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아무리 헤집어도 더 나올 게 없을 때 나는 낙망했다. 그때 갈 수 있는 길은 딱 두 개. 그만두거나 짓거나. 나는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소설 쓰고 싶다며?). 나는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나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점이었고(꿈을 접어야 할 만큼 진정 낙망했다), 또 하나는 분명 되지도 않는, 형편없는 이야기인데,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점이었다(내가 발견한 희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기승전결은커녕, 날마다 완결 짓지 못하는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이야기보따리가 되었다.


 



자, 나는 주크박스도 되고 이야기보따리도 가능한 멀티 엔터테이너로 성장했다. 뭐가 두려울 쏘냐? 하지만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달랐다. 셋째에게 젖을 물리고 누워 전투태세를 갖추면, 뒤에서 둘째가 내 목점을 만지며 나를 껴안고(목점의 이유), 머리 위에서 첫째가 내 앞목을 만지며 각자 외쳤다.



노래 불러줘.
이야기 해줘.



내가 전략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둘이서 주고받았다. "노래부터." "이야기부터." "아냐, 노래~" "싫어, 이야기!" 담판을 지으려 할 땐 이미 누군가 울고 있었다. 나는 결국 무서운 엄마가 되어서 서둘러 상황을 종료시켰다(데우스 엑스 마키나).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몹시도 궁금하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4년 전, 아홉 살, 일곱 살이 된 첫째와 둘째를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밤들이 흐른 그쯤엔 주크박스도 이야기보따리도 낡고 너덜너덜해져서 웬만해선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셋째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기도 해서, 밤엔 불을 끄고 "잘 자, 사랑해. 좋은 꿈 꿔."라고 말하고 등을 좀 긁어주는 게 끝이었다(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바로 잠든 것은 아니고... 대화의 장이 열렸다...).


2년 전부터 막내도 언니들과 한 방에서 잤다. 잠자리 독립을 한 것이다! (여기엔 느낌표가 백만 개쯤은 붙어야 하지만, 지면의 한계상...)


하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오늘만 재워주면 안 돼?" "노래 딱 세 곡만 불러주면 안 돼?" "오늘만..." 하는 말에 붙잡힌다. (새벽에 깨서 내가 왔다갔다 하거나, 안방 침대로 기어들어온 아이들을 양쪽에 끼고 자는 건 논외로...)


그럼 나는 셋 중 한 아이 옆에 누워서(잠들면 다른 아이 옆으로 차례차례 옮겨가며), 주크박스를 가동한다. 덜, 덜, 덜. 아직 쓸 만한지, 아니면 아이들이 고마워서 그러는지, 혹은 추억의 맛 덕분인지, "엄마는 노래를 잘한다", "엄마 목소리가 좋다", "잠이 솔솔 온다"고 한 마디씩 한다(진심이 담겼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역시 겉으로는 버릇이 들었는지, 콘서트 티켓팅 광탈되는 가수라도 되는 양 심취해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연에 빠진다. 얼른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빨리 내 자리로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고 하는 내면의 아우성을 잠재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랑이란 어쩔 수 없이 내 몸과 마음과 영혼, 무엇보다 시간을 주는 일인데, 나는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채우는 게 훨씬 쉽고, 그런 욕망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투명하게, 그리고 쉽게 오지 않는 잠처럼 말똥말똥한 눈으로 피할 길 없이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워서.



이 평화로운 아침을 위해 밤마다 나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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