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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r 08. 2024

내 아이를, 다시, 예뻐한다는 것

귀한 줄도 몰랐던 귀한 걸 되찾고

몇 가지 징후로 내가 정말 이상하다는 걸 알고 정신과에 갔었지만, 정말 큰일날 뻔했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건 훨씬 나중이었다.


잠을 잘 자지 않고, 하루 종일 웃지 않고, 사소한 일에 버럭 불같이 화를 내고, 요리 같은 복잡한 일을 해내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그러다 급기야 무엇을 해도 무얼 생각해도 즐겁지 않고, 제발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매 순간 바라다가, 눈앞의 아이들을 보고 정신과에 가야 한다고 스스로 설득할 수 있었다. (육아우울증과 정신과 진료의 기록 #1.)


내게 맞는 의사를 찾고, 또 내게 알맞은 약과 용량을 알게 되기까지 두 달쯤 걸렸다. 그 후 어찌 보면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났다. 나는 염색을 했고 예쁜 옷을 사 입었고 화장을 했으며 모임에 나갔다. 눈에도, 몸짓에도, 말에도 생기가 돌아왔다. 남편은 드디어 나를 '되찾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겉으로 볼 때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내 안에서 나는, 손가락을 탁 튕겨 최면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탁' 하는 순간 '확' 변했다기보다 '서서히'에 가깝지만. 아주 긴 시간 자고 있었다는 감각에 얼얼했고, 원래의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엉망이었던 감각과 판단력이 제자리를 찾으며 제일 먼저 또렷해진 것은, '첫째가 다시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기다림 뒤에 생명이 내 안에 찾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눈으로 보고 품에 안았을 때, '내가 드디어 엄마,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엄마'라는 정체성에 기꺼이 나를 지웠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내 아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건 그냥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첫째가 일곱 살, 여덟 살 무렵, 내 우울증이 깊어져가는 동안 아이를 차갑게 대하는 날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그 순간 내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나는 명확한 이유들이 있다고 여겼고, 그에 지지 않으려고 싸웠다. 하지만 결국 진 것이다.


아이는 실제로 전혀 귀엽지 않았다. 아기 티를 완전히 벗고 앞니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어딘가 얼굴이 불균형했다. 다 큰 아이처럼 보이고, 부모도 그렇게 대하고, 아이 스스로도 (어린 동생들이랑 있으니) 그런 줄 알지만, 당연히 전혀 다 큰 아이답지 못했다. '미운, 아니 파묻어버리고 싶은 일곱 살'이란 말이 날마다 떠오를 만큼 이전과 차원이 다르게 제멋대로 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닮았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보였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깊고 먼 곳까지 닿곤 했다.


나는 잘못 키웠다고, 이제 다 망쳐버렸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그 어떤 때보다 (아기를 가지려고부터 아이를 잘 키우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아주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눈에 거슬리는 언행을 할 때마다 확인했다. 또 모두가 내 아이를 그렇게 본다고, 판단한다고 확신했다. (아이를 못 키우기도 했거니와, 어쨌거나 내 아이를 사랑하지도 못하는 엄마가 되었으니) 엄마로서의 능력과 자질,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이유와 가치까지 완전히 쓸모없음, 그 이하라고 여겼다.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고작 일고여덟 살짜리 아이가 뭘 그렇게? 예를 들면, 아이는 똑똑하고 말을 잘했는데, 아는 것을 뽐내려 했다. 좋고 싫고가 명확하고 자기표현도 잘해서, 여럿이 있을 때 튀었고 타인이 맞춰주어야 했다. 원하는 게 너무 많았고, 하고 싶은 건 끝까지 해야 했고, 눈치를 보거나 참기보다 혼나더라도 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니까... 별 문제가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잘 크고 있었다. 그 나이쯤의, 그런 성향의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법한, 남의 아이가 그러면 당황할 것도 싫을 것도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어른으로서 여유롭게 맞춰줄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를 이상하게, 못나게 보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덜 맞는 사람도 있고, 특히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일반적인 경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 그때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몰랐을 뿐, 옛날 사진을 쭈욱 보다 보면 예쁘고 귀여웠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앞니가 없거나 혹은 대문짝만 한 것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사랑스럽기만 하다. 나머지 내 아이들과 비교해도, 그 나이에 그 정도면 충분히 의젓했다. 제멋대로 구는 것도 특별할 것 없었고, 오히려 말이라도 통하는 쪽이었다. (지금 막내에게 대부분 상황에 무심하게, 너끈히 웃으며 수용하고 허용하고 심지어 격려할 때마다, 첫째에게 얼마나 야박했었던가 절감한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왜 그토록 절망의 눈으로 보았을까? 나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나라는 존재도, 세상 모든 것도 의식조차 하고 싶지 않을 때, 처음 키워보는 중이라 첫 아이가 보여주는 모든 변화가 버겁기만 해서, 여유도 관대함도 바닥난 내가 아이를 받아들이고 품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뿐이라는 건, 아주 나중에 깨달았다.


정신과 약을 먹고 의사 선생님이 강조한 대로 잠을 충분히 자고 나서, 어떤 느슨함과 편안함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내 눈에 다시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가슴이 떨렸다. 얼마나 귀한 줄도 몰랐던 귀한 걸 되찾아서 울고 싶을 만큼 감사해서. 그리고 그걸 잃어버리고 살았던 날들이 억울하고 마음 아파서. 무엇보다 영영 잃어버릴 뻔했다는 서늘함에.


아이를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 같았다. 마음껏 예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변화하고 성장했고, 그건 언제나 내겐 도전이고 시험이었다. 더 많은 손길과 배려가 필요한 동생 두 명도 어디 가지 않았다. 깨달은 만큼 더 잘하고 싶은 내 마음에 비해 내 그릇이 더 커진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갈수록 많은 걸 알아가고 있었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일은 줄고 있어서, 나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고, 만회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느꼈다.


그래서 툭하면 다시 나락에 떨어졌다. 불행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그렇다.


섣불리 다 이러고 산다고, 괜찮다고 안위하지 않는다. 나는 줄타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컵 쌓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고, 까딱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끝까지 모를 일이다.


내가 우울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을 때, 아이도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할 거라는 말을 먼저 육아우울증에 걸렸던 선배 언니에게서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엄마의 우울증이 흔적을 남겼을 거라고. 나는 첫째를 데리고(둘째와 셋째는 거의 걱정되지 않았다) '모래놀이 상담치료'를 아홉 번 다녔다. 아이 혼자 상담사와 40분 동안 모래놀이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후에 10분 동안 내가 상담사와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내가 원한 것은, 전문가를 통해 아이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있다면 '모래놀이'를 통해 치료효과를 얻는 것이었다. 상담사가 내게 해준 이야기는 수긍이 간 것도 있고, 보류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도움이 되기도 했고, 그다지 큰 도움은 아니었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다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처음 1회차 받고 4회기씩 신청하는 체계라) 두 번째 4회를 신청할까 말까 고민이 되어서(남편이 휴가를 내는 것, 둘째 셋째와 몇 시간씩 떨어져 있는 것, 그리고 비용도 부담이었다), 상담사에게 솔직히 물었었다. 이게 어떤 치료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아이에게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상담사는 아이보다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고, 너무 에너지가 없다고 했었다), 무엇을 기대해야 하냐고. 상담사는 말했다. 여기 와서 자기와 모래놀이를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하러 엄마와 단 둘이 오가는 시간, 온전히 둘이 이 시간을 갖는다는 게 의미가 있는 거라고.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아이도 아이와의 관계도 가끔 명확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듯, 큰 그림도 없이 체계도 없이, 무턱대고 억지로, 최선과 정성은 다하면서 언제나 회의적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 상담사의 이야기처럼, 진짜 의미가 있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령, 세상 유치하게 투닥거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는 게 우스꽝스럽고 지긋지긋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기도 하다는 걸 아이도 나도 배운다든지,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좋아했던 엄마란 존재를 최종 빌런보다 싫어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인간에 대해 아주 중요한 감을 잡는다든지(내 쪽에선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깨닫는 과정이 되겠고),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실수와 잘못들, 아무리 다짐해도 날마다 실패하기만 하는 좌절감에 대해 고작 글로 적으며 또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것이 쓸데없이 곱씹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언젠가 아이에게 닿을 한 줄기 진심이 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사랑스러워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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